<사순절 제9일, 춘계재, 성소를 위한 기도일> …….. (새번역)
{ 복음 I – 수도자 성소 } 마태복음서 9장 37-38절 ……..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38]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그의 추수밭으로 보내시라고 청하여라.”
***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 이외에도,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 때에 동행했던 120명의 추종자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100명 이상의 복음사역자를 친히 양육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초대(사도행전 2장의) 교회가 하루에 3천 명이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복음증거자의 수도 역시 급속도로 확대되어 나갔을 것 같습니다.
중세기에는 수도원을 통해서, 그리고 근대에는 신학교를 통해서 복음증거자들이 교육되었습니다. 그렇지만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세계인구의 절반입니다.
{ 복음 II – 성직후보자 성소 } 마태복음서 8장 21-22 ……. [21] 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2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
*** 수많은 성직자를 배출하던 신학교육기관들에, 성직후보자들의 수가 현저히 감소하고 있고, 교회 역시 점차로 낙후되어가고 있습니다. 신학교육을 받은 이들의 활동이 미온적이고, 소극적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9세기까지 기독교국가로 자타가 칭하던 구미의 나라에서 기독교 교세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부터 급감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실증주의 사고방식과, 실리주의 생활태도에서 오는 ‘종교이후의 시대’를 구가합니다.
현대인들은 스스로 종교(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날과 같은 현상을 미리 내다보셨는지,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이 치르게 하여라’(위의 본문 22절) 하신 것입니다. 교회를 장례나 치르는 장소로 여기는 이들이, 성직자들을 비롯해서 꽤 많아졌습니다.
허울 만의 ‘일꾼’들이 교회를 죽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경연구를 ‘자료비평학’ ‘비교종교학’ ‘인류문화유적발굴’ 정도의 고고학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 만도 2과 } 마가복음서 2장 13-14절 ……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로 나가셨다. 무리가 모두 예수께로 나아오니, 그가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레위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 세상은 물질의 세계가 있고, 심리-정신의 세계가 있으며, 영혼의 세계가 있습니다. 물질의 세계는 사회, 정치, 경제가 운영되는 세계입니다. 심리-정신의 세계는 문화와 예술 등 인간의 삶의 내면을 다루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영혼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길(인생의 목표)과 진리(구원의 복음)와 생명(영생)이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인간세상에 친히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영혼의 세계를 보기 바라는 영혼들을 찾아,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를 만나셨고, 나타나엘, 사마리아 여인, 막달라 마리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레위를 만나 주셨습니다.
또 바울을 부르셨고, 바나바, 폴리캅을 부르셨고, 어거스틴, 후란시스를 부르셨고, 20세기 한국에서 손양원목사와 많은 사역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들을 향해 말씀으로, 손짓으로, 영적 깨우침으로 당신의 제자들이 되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기도> 저희를 향하여 ‘산 자여, 따르라’고 부르시는 예수님, 저희의 영이 부르심 앞에 반응하게 하시고, 주님의 추종자가 되어 복음 전하는 자로 저희의 생애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