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해치려는 자들의 정체

<사순절 제27일, 말씀 묵상> ……………. (새번역)

{ 복음 } 요한복음서 7장 25-30절 ……. [25] 예루살렘 사람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바로 이 사람이 아닙니까? [26] 보십시오. 그가 드러내 놓고 말하는데도, 사람들이 그에게 아무 말도 못합니다. 지도자들은 정말로 이 사람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것입니까?

[27]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에서 오셨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29] 나는 그분을 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30] 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아무도 그에게 손을 대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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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본문에는 예수님의 신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누군지를 요한복음은 명백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25절 서두에서 ‘예루살렘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라고만 썼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요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밝히면 안 될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주고 받던 말을 소개하면서, 26절 하반절에서 “지도자들은 정말로 이 사람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것입니까?”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지도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지도자’로 번역된 희랍어 원어는 ‘아르콘’ 인데, ‘충분한 자’, ‘책임있는 통치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즉 그 당시의 유다에서 로마총독, 대제사장을 비롯한 권세가들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로마총독은 이방사람이라고 해도, 대제사장은 유다인들의 최고권력자로서, 하나님의 집인 성전 예배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유다교의 중요한 신앙 내용인 메시아가 도래하리라는 예언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는 사실을 믿었는지도 의심스럽고,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구세주가 오신다는 예언에 대해 코방귀를 뀌고 있었던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이와같이 형식적 신앙, 관념적인 신앙과, 실제적인 신앙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해의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의 전임자인 안나스는 모두 이처럼 명색이 대제사장들이었지만, 현실주의자요, 불신앙의 인간들이었고, 구세주의 도래란 있을 수 없는 일로 믿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심지어 안나스는 ‘한 사람(‘예수’를 의미함)이 죽음으로 온 백성이 (로마 제국에게) 망하는 것을 면하면 좋지 않은가?’ (요한 18:14) 이런 망령된 말을 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나치 정권 아래에서 독일교회는 의견이 양분되었습니다. 친나치의 무리들은 나치에 맞설 필요가 없다며 융화적 노선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반나치의 교회들은, ‘나치는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고 들어가는 악마적 세력이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그들을 교회는 끝까지 막아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순교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의 반기독교 세력은 그들의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현직 정치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들의 기독교관이 한국의 기독교를 못마땅히 여기는 것으로 입장표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부정적으로 볼 만큼 한국의 교회가 반국가적인 단체였고 반사회적인 집단이었단 말인가요? “시온(*성전 곧 오늘의 교회를 말함)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고 만다.”(시편 129:5) 고 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직껏 한국의 기독교는 복음진리를 위해 순교의 피를 더 흘려야 한단 말입니까? 교회가 진리의 토대 위에 서기 위한 피흘림이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순교의 피를 바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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