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요일, 사순절 제36일> ……..…… (성경전서 새번역)
{ 서신 } 고린도전서 1장 17하-19, 22-24절 ……. [17] … 복음을 전하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이 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9]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22]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24]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 복음 } 요한복음서 12장 27-29절 ………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왔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십시오.” 그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이미 영광되게 하였고, 앞으로도 영광되게 하겠다.” [29] 거기에 서서 듣고 있던 무리 가운데서 더러는 천둥이 울렸다고 하고, 또 더러는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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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중국에서 만난 가정교회 ‘지도자’(목사)들 가운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공무원이었다가 자진 사퇴를 하고, 자기 재산을 처분하여, 시내 상가빌딩에 큰 사무실을 세로 얻어서, 거기서 가정교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일이면 공안이 문께에서 출석하는 교인들의 수를 세고 있었습니다. 스무다섯 명 이상이 모이면, 교회를 해산시킬 수 있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에 전세금은 국가재산으로 몰수당합니다.
그 분을 마지막 뵐 때, 그가 신장 수술을 받은 직후였는데, 복부를 완전히 봉합하지 못한 상태로, 옆구리에 매달린 비닐주머니로 소변이 배출되고 있었습니다. 소변통을 차고 그 분이 그후 얼마나 더 교회 일을 보셨는지는 제가 모르겠습니다.
비록 모양새로는 볼품이 없었지만, 복음전파자로서의 사명감에 의기충천했던 그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 2 ) 기독교 복음의 창시자시요, 신분으로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그런 죄인을 교조로 삼은 종교를 누가 믿는단 말인가?’ 고 코웃음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초라한 죄인의 모습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예수님을 둘도 없는 우리들의 구세주요, 영원토록 홀로 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실 영광스러운 분이시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철학을 좋아하는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십자가를 믿는 기독교가 전혀 철학적 이론을 배경으로 한 ‘고급종교’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또 선민사상으로 콧대가 높은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처참히 죽인 스캔들을 지닌 백성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가 우리의 구원의 표상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의 증거’라고 믿습니다.
( 3 ) 예전적 교회들은 많은 상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상징이 십자가입니다. 속죄의 십자가요, 구원의 십자가요,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금과 보석으로 꾸민 십자가가 예배의 장식벽 중앙에 놓여 있고, 성직자의 가슴팍에 십자가가 번쩍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세워진 교회 공간과, 또 십자가가 매달린 가슴팍에서 복음이 배척받는 불의한 음성이 들리고 있다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이요, 그의 흘리신 피의 터전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를 거절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인류(우리 한 사람 한사람)의 죄와 직결되어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내 죄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할 죽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인류의 죄 가운데는 ‘노력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 인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기도, 원칙 없는 정치 등 여섯 가지 중대한 죄’(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에서) 도 사하셨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은 예수님께서 당하실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당해야 할 형벌이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고통을 당하셨고, 치욕을 당하셨고, 수난하셨습니다. 이 성화요일 아침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저를 용서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