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개정판)

{ 복음 } 요한의 복음서 3장 1-8절 …….. [1]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2] 어느 날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3]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는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5] “정말 잘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7] 새로 나야 된다는 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8]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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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보내고 한 주간이 지난 오늘, 성령강림 절기를 재촉하듯, 성령에 관한 대표적 본문 하나를 교회가 택하여 읽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 임재가, 교회와 신자들에게 결정적으로 소중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말로 ‘밤 손님’은 도둑을 말합니다. 손님으로 남의 집에 가려면, 낮에 다니는 것이 상식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예외적인 ‘밤 손님’이 있어서 그 사실을 짐짓 밝히고 있습니다.

바리사이파에 속한 사람이 예수님을 공공연히 만난다는 소문이 나면 자신의 처세에 불리한 일이 될 것임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이름이 니고데모였습니다.

그가 먼저 말문을 열기를, “선생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분명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별로 사교적이지 않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부연하기를,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구약에서는 히브리 말로 ‘루아흐’ (‘바람’ 이라는 뜻)라고 하고, 신약에서는 희랍어로 ‘프뉴마’ (‘바람’ 이라는 뜻), 또는 ‘프뉴마 하기오스’ (‘거룩한 바람’)라고 말합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불면 사물이 흔들리거나, 봄의 바람은 산천초목을 싹 트게 하고, 성장시키고, 아름다운 색갈로 변하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바람인 ‘영’이 불어 오면, 인간이 속된 죄에서 벗어나 거룩한 인간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맞아들이는 사람은 시한부 인생을 살지 않고, 영원을 사는 인생으로 변합니다. 곧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다시 찾아온 적이 있는지는 사복음서에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려고, “침향을 섞은 몰약 백 근 쯤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몸에 발라 드리고, 아리마태아 요셉과 함께 장례를 지내 드렸다고 했습니다.(요 19:39)

그만큼 예수님을 메시아로 공경하면서 살고 있었다고 보입니다. 최극형을 받은 예수님을 가장 크게 공경하는 자세로 장례를 치러드렸다는 것은 여간한 믿음의 자세 아니고는 행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영적 신분을 분명히 하고 살도록 인도하셨던 예수님의 권고를 그의 여생에 명심하고 복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말씀은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이 아침에 주님께서 다시 반복하여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아직껏 물(회개의 세례)과 성령 안에 온전히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어물거리고 있는 것이오?” 라고.

<기도> 주 하느님, 거룩한 바람 곧 성령께서 안타까이 저희를 향하여 불어올 때에, 성령님을 영접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받아, 변화되고, 거룩한 백성으로, 영원한 나라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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