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요한 복음서 6장 24-29절 ………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 여러 배에 나누어 타고 예수를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를 찾아내어 여쭈었다. “선생님,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2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노니, 여러분이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오.
[27] 여러분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시오.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여러분에게 줄 것이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오.” [28] 그들이 물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여러분이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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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제가 잘 아는 여자교우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고령이신 그의 시아버지가 위독해서, 별세하기 전에 예수를 믿고 돌아가시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시아버지와 병실에 단 둘이 있을 때에, 긴하게 말씀 드렸답니다.
“아버님, 예수 믿고 천국에 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 다음에 아버님을 반갑게 만나 뵐 수 있을 것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니까, 조용히 계시던 아버님이, “낸들 젊어서부터 기독교를 믿어 보려고 교회에 다녀 본 적도 있었지 않았겠느냐? 하지만 교회에서 내게 들려 주는 말들이,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어지지가 않는 걸 어떻게 하냔 말이다. 그래서 지금껏 믿지 못한 것인데, 내가 어떻게 해야 믿을 수 있겠냐? 좀 말해 보거라.” 하더랍니다…
( 2 ) 교회가 세례를 받을 만한 교인으로 인정하는 데에는, 최소한도 하나님의 존재,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 되심, 곧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 믿음으로 구원 받음, 영생과 영벌의 심판을 골자로 하는 몇 개의 교리적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못 믿겠다는 이에게는 세례를 주지 않는 것이 교회의 관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교인이 되기 위해서 일단 긍정적인 대답을 하고 세례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그릇된 태도가 잘못인 줄 알면서도, 적지 않은 사제들이 신앙에 다소 미심쩍은 점이 있더라도 세례를 베푸는 것은, 옛날 한 권위있는 분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셀무스 (1033-1109)는 1090년부터 19년간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는 믿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 3 ) 또 하나의 유력한 방증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의심이 많던 제자 토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나를 보고서야 믿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요 20:29)
보지 못하고도 믿는 사람은 수재든가, 아니면 그 반대이기가 쉽습니다. 그 사이에 속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인데, 그들은 보지 못하고서는 아예 믿을 생각을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떡하라고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보편적인 합리주의자들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심은, 예루살렘 거리의 ‘장삼이사’들은 물론이고, 헤롯왕, 빌라도 총독,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질을 하던 로마 병정들, 헤롯의 졸도들, 심지어 가룟 유다까지도 구원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기독교는 난해한 교리적 정리를 해 놓는 일과 동시에, 보통 사람들도 이해가 가능한 스토리 작성들을 좀 풍성하게 해 놓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리강론을 하시지 않고, 보통사람들에게도 얼마든지 통하는 비유로써 복음서가 가득 차게 하셨음을 눈여겨 봅시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 교회가 교리적 자기 수호에만 급급하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진실되고 은혜로우신 삶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도록, 성령을 통하여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