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철학에 붙잡히지 마시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이상신 생생 성경)

{ 만도 1과 } 골로새서 2장 8-15절 …… [8] 누가 여러분을 별 의미도 없는 사람의 전통을 가지고 기만하고 또 철학을 이용하여 포로로 잡아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세상과 발을 맞추어 그 체제를 따라가도록 하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9] [그리스도]는 모든 하나님의 충만함이 몸에 거주하시는 분입니다. [10]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충만함을 받습니다 그가 모든 권세의 시작의 [머리]이시며 [모든] 권위의 머리이십니다

[11] 그 안에서 여러분은 사람 손으로 시술하는 할례가 아닌 육체의 몸을 완전히 제거하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세례받을 때 그분과 함께 죽어서 묻힌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죽은 자들 중에서 그분을 다시 살리신 역사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여러분도 함께 살리셨습니다 [13] 옆으로 벗어나는 일탈만이 아니라 육체를 [벗어버리는] 할례를 받지 않아 생명이없던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살리셨습니다 옆으로 벗어난 우리의 모든 일탈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14] 우리에 대해 기록한 호크(규정, 도그마)를 지워버리셨는데 거기에는 우리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적대적인 [법규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그분은 송두리째 들어올려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15] 권세의 시작들과 권위들을 완전히 무장해제시켜 대담하게 [만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십자가]를 가지고 저희 [권세들을] 정복하고 승리를 거두신 것입니다

* * * *

오늘은 제1세기의 무신론과 오늘날의 무신론을 포함한 적그리스도적인 철학에 속는 일이 없도록 골로새 본문을 중심으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특별히 파울 화인벅(Paul Ferinberg, 2004에 별세할 때까지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조직신학교 교수로 재직)의 글 ‘무신론’(존 스토트 지음, ‘한권으로 배우는 신학교’, 17-세계의 종교)을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헬라어 아데오스(하나님 없는 자)는 신약에서 단 한 번 나옵니다.(엡 2:12) 이것은 경건하지 못한, 비극의 가장 깊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구약과 신약은 모두 하나님의 실재에서 설명을 시작합니다.

정상적인 인간은 하나님을 압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은 비정상적인 인간이 사는 방식입니다. 말하자면, 무신론은 어떤 빗나간 인간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헬라인들은 무신론자라는 단어를 세 가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1) 신앙심이 없거나, 경건하지 못하다는 의미. 2)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인간. 3) 신 개념을 믿지 않는 사람.

주후 1세기의 유신론이 넓고 깊게 뿌리를 내렸듯이, 20세기에는 그 반대로 무신론이 넓고 깊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특별히 공산주의가 현대 무신론 가운데 가장 의도적으로 앞장서고 있습니다.

심지어 건국 초부터 기독교국가임을 표방했던 미국에서 1925년에 무신론진흥협회를 조직하여, 1932년에 물경 550만명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한 막강한 세력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국적으로 학교들에 무신론 강의가 이루어지도록 교수들을 파송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무신론을 대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고전적 무신론 : 이것은 특정 민족의 신을 배척하는 무신론입니다. 유대인의 여호와, 무슬림의 알라 등등. 2) 철학적 무신론 : 철학으로 신의 존재가 입증될 수 없다는 주장. 3) 교의적인 무신론 : 불가지론자(모든 종교적 논란의 근거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거나 세속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기 속한다. 4) 무신론적 생활인 :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무신론에 대한 이론적 형태의 반박이 있습니다. 1) 무신론은 이성에 맞지 않는다는 반박. 2) 무신론은, 인간이 삶 속에서 경험하는 신을 설명하지 못한다. 3) 무신론은 우주의 설계, 질서, 규칙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4) 무신론을 인간의 혼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한다.”

<기도> 주 하나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