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용서, 화해가 기독교의 DNA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서신 차용 } 사도행전 11장 2-18절 ……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할례를 치른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말했다. [3] “당신은 할례를 치르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동안에 겪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5] “내가 욥파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네 모퉁이에 끈이 달려서 내려오다가 내가 있는 곳에 앉았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 발 달린 짐승과 들짐승과 길짐승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 주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저들을 잡아먹어라.’

[8]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온전하지 않거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온전하지 않다고 말하지 마라.’ [10] 이런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들은 모두 하늘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 때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은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욥파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고.

[15] 그리하여 내가 말을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 나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여러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오.’

[17]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지더니,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하나님은 이방 민족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 * * *

이스라엘과 이란이 현재 티격태격 공방을 그치지 않는 것을 보면, 소위 ‘치큰 게임’이라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주 악질적인 장난으로서, 그 언젠가 미국 곳곳에서 청년들이, 폐도로를 사용해서 ‘자동차 마주달리기’ 결투를 하던 풍습입니다.

도로 한 가운데 그어진 분리선에 자동차 왼쪽 바퀴를 올려놓고 서로가 마주 향해서 질주합니다. 마주 오던 두 대의 차량 가운데 황색선을 먼저 비키는 사람이 ‘치큰’(겁쟁이)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목숨을 건 장난입니다.

지금 이란과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목숨만 건 것이 아니고,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면 온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는 엄청난 장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쪽이 다 제 정신이 아닙니다.

용서를 빌 줄도 모르고 용서를 할 줄도 모르는 우리 인류들을, 그냥 파멸로 가도록 두고 보실 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실 구세주 독생자 예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하셨고,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 화해의 가교를 건설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말하라고 한다면, 죄의 용서, 그리고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화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키워드는 ‘사랑’, ‘믿음’, ‘그리스도(메시아)’, ‘십자가’, ‘구원’, 그리고 그 밖에도 많은 어휘들이 동원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기독교 신앙의 DNA인 ‘죄의 용서’와 ‘하나님과의 화해’를 전하고 있는 어휘들입니다.

주후 41년 경,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유대 땅 안팎에 증가세에 있던 이방인 신도들을 두고,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또 어떤 이들은 ‘그대로 두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방인들이 기독교를 믿을 수가 있느냐, 없느냐로 논쟁이 생긴 겁니다. 트집의 근거는,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있다’ 논쟁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절초풍을 하실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둔한 인간들은 이런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도, 생명을 건 싸움을 지금껏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구원의 방주로 건설하신 교회 안에서 이런 다툼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베드로의 격앙된 음성에 교회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구원에서 제외된 민족은 하나도 없습니다. 구원에서 제외된 사회적 계층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만민을 위한 복음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만민을 위한 복음을 만민에게 전하게 하옵소서. 반기독교적이라고 알려진 무리들이 오히려 알고보면, 복음에 갈망하고 있는 이들임을 저희가 압니다.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도록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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