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구약 } 잠언 15장 28-31절 ……… [28] 의인의 마음은 대답하기에 앞서 깊이 생각하지만, 악인의 입은 사악한 것을 내뱉는다. [29] 주님은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30] 반가운 눈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좋은 소식은 뼈마디에 생기를 준다. [31] 생명이 담긴 훈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무리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 서신 } 에페소서 4장 14-15절 …….. [14]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방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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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진보계 언론인으로 한때 프랑스 파리로 몸을 숨겨 나그네 생활을 했던 고 홍세화 씨가 중태에 있다며 한 사제의 거처로 연락을 했습니다. 자신이 전화를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여동생이 했습니다.
내용인 즉, 홍 씨가 암이 위중해서 의사도 심각한 결론을 내리고, 어서 해외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 여동생에게 귀뜸을 주었답니다. 사제는 종종 이런 연락을 받게 되곤 하는 것이 직책상의 경험이므로, 그 사제는 바로 그 다음 날에 그를 방문했습니다.
댁을 방문해 보니, 2층 빌라였습니다. 그런데 예상밖으로 중태라던 홍 씨가 거실에 앉아 있다가 반가운 얼굴로 맞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제는 초면이어서, 그와 인사를 나누고, 앉자마자 이렇게 거실에 한 시간 나와 앉아 있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야 조병성사(중환자가 임종하기 전에 사제와 더불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 를 드려도 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한 시간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사제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름난 사회주의자인 줄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혹시 무신론자이신가요? 지금의 기독교 신앙관은 어떠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세례를 베풀어도 되겠습니까?”
이런 단도진입적인 질문에 그는 당황하는 듯했습니다. “평생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이 죽음이 임박했다고 하나님을 찾는 것은 뭔가 도의적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급격히 곤궁한 상황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자신의 사고방식, 특별히 종교관을 바꾸는 것이 옳게 보이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일생 자신의 생애를 이끌어 온 신념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때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깊은 감화를 준 것은 성경도 아니고 기독교의 설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빅톨 위고의 ‘레 미저러블’에서 주인공 장 발장이 만났던 미리엘 주교가 보인 관용의 정신이었습니다. 그의 관용이, 저의 부족한 삶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되게 한다는 신념을 주었습니다.”
사제는 말했습니다. “비록 작중 인물이라 해도, 미리엘 주교는 진실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준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께서도 “자비와 관용과 오래 참음으로”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롬 2: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3:16)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골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 세상을 멸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용서하심으로 구원하기 위해서였다고 했습니다.(요 3:17) 기독교가 대속의 십자가를 대표적인 표상으로 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제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홍세화 씨가 그의 생애에서 미리엘 주교의 정신을 받들어, ‘장 발장 은행’, 곧 가난의 책임을 본인에게 추궁하지 않고, 고통 속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서둘러 재정적 압박에서 구제하는 대여은행을 설립하고 경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제는 “알았습니다. 선생님, 지금 살아 숨쉬고 계신 동안에 세례교인으로 사시기를 권합니다.” 하면서 세례명을 본인이 정하기를 청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그가 입을 벌려, “내가 성서 인물도, 교회의 성인 이름도 아는 바가 별로 없는데, 혹시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더라도 작중 인물인 미리엘 주교의 이름을 따서 ‘미리엘’이라고 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제는 아주 반색을 하며, “저는 이미 세례명으로 신자에게 ‘미리엘’을 준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왜 안 되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홍 씨도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리하여 그분 댁의 거실에서 세례식과 조병 기도는 거행되었고, 그후 4개월이 지난 4월 18일 그를 곁에서 지키던 후배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며, 중환자실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저희가 구원을 얻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