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보화로 여기는 사람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새번역)

{ 서신 차용 } 사도행전 26장 19-20, 24-25, 27-29절 ……. [19] “그러므로 아그립바 임금님, 나는 하늘로부터 받은 환상을 거역하지 않고, [20] 먼저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에게, … 나아가서는 이방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전하였습니다. … ” [24] 바울이 이렇게 변호하니, 베스도가 큰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 하고 말하였다. [25] 그 때에 바울이 대답하였다. “ … [27] 아그립바 임금님, 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 [28] 그러자 아그리빠 왕이 바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짧은 말로 나를 설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는가!” [29] 바울이 대답하였다. “짧거나 길거나 간에,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 ‘심봤다’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했을 때 세 번 지르는 소리라고 하지요. 그것을 영어로 바꾸려면, 다음의 영어 속담을 사용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Finders, keepers!” ‘먼저 찾은 사람이 주인이지!’ 그런 뜻일 테지요.

보물 가운데 보물이 뭘까요? ‘복음’이지요. 보약 가운데 보약이 뭘까요? 복음입니다. 그러면 먼저 복음을 발견한 사람이 복음을 차지하고 끝입니까? 그건 그렇지 않지요. 먼저 복음을 소유하게 된 사람들은 이 보물을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난리를’ 칩니다.

위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당시의 임금인 아그립바와, 로마총독 베스도와 함께 복음을 나누고 싶어서, 쇠사슬에 묶인 죄인의 신세로 자기를 취조하는 자리에 들어가서도, 복음을 전하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본 스타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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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요한복음 21장 15-17절 …….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16]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쳐라.” [17]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 인격(예수님)이 인격(동역자)에게 사랑의 확인을 하는 것은 마땅한 절차입니다. 사명이 뒤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신 질문은, 베드로의 마음을 의심해서도 아니었고, 의중을 묻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사랑의 끈끈함을 확인하고 나서, 베드로에게 인간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당부를 하실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당부였습니까? 양 떼를 부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양 떼를 먹이라, 양 떼를 돌봐 달라”는 부탁 속에는, 1) 목숨을 걸고 양 떼에게 영적 양식을 먹이라, 2) 목숨을 걸고 양 떼를 돌보라, 3) 목숨을 걸고 양 떼를 사탄에게 노략질 당하지 않게 지켜라, 4) 목숨을 걸고 양 떼들의 목자가 되라, 이런 부탁을 하고 싶으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사랑의 맹약 없이 될 수 있는 일입니까? 평생을 해로할 신혼부부가 백년가약을 맺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회중 앞에서 분명한 사랑의 다짐을 받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고귀한 구원역사에 동원될 동역자들에게 사랑의 확인이 필요하셨습니다.

매일, 아니 매 순간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사랑을 확인하시면서 믿음의 권속들을 양육하고 돌보기를 당부하십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날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시고, 그 사랑 가운데 믿음의 권속들을 양육하고 돌보며 오늘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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