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만남에 성령을 모시고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새번역)

{ 복음 } 요한복음 1장 39-56절 …….. [39] 그 무렵에, 마리아가 일어나, 서둘러 유대 산골에 있는 한 동네로 가서,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에, 아이가 그의 뱃속에서 뛰놀았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42] 큰 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았고, 그대의 태중의 아이도 복을 받았습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그대의 인사말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에, 내 태중의 아이가 기뻐서 뛰놀았습니다. [45]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

[46]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48]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49] 힘센 분이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51]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54]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함께 석 달쯤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 *

*** 본문 39절에서, 마리아가 친척 엘리사벳의 집, 곧 유대 산골 마을을 찾아갔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헤브론이었던 것으로 사람들은 추정합니다. 이 때에 엘리사벳은 남편 사가랴 사이에서 노경에 임신한지 육 개월 되었던 때였습니다.(눅 1:26)

두 여인은 모두 하나님의 크신 섭리에 의해서 임신 중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구세주 예수님을, 엘리사벳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알리는 선지자 세례 요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태중에서 육 개월 된 태아 세례요한이, 손님으로 왕림한 마리아의 몸에 있는 태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범상치 않은 임신을 하고 있었던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사회적으로는 그리 대단한 지위에 있었던 이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분의 사이에서 나누던 말씀 속에서, 천지개벽의 역사를 도출해 낼 만한 영적 기상을 우리가 봅니다.

두 분의 임신 자체가 이미 예사롭지 않은 임신이었던 것은 부언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두 여인이 주고 받는 담화는 진실로 역사의 거대한 변천을 내다보고 있던 그들의 가슴 떨리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수다스런 여염집 아낙네들의 대화가 아니었습니다. 그 어느 혁명가의 노래라 할지라도 이토록 광대한 비전을 말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눅 1:51-53)

옛 사람들은 손님이 왔다가 자리에서 일어설 때면, ‘빈 말씀만 나누다 가시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이렇게 인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별 대접을 못해 드린 것을 아쉬워하는 뜻인 듯해도, 내면에는 의미없는 방문이 되게 만든 것을 용서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인사도 나눌 것 없이, 저의 대화는 허공에 날아가면 그뿐인 대화들을 나누다가, 손님을 보내 드리곤 하는 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오늘은 ‘성모 방문 축일’로 교회가 기념합니다. 이 교회의 관습은 주후 1263년에 이르러서야, 프란시스 수도회에서 축일로 제정했고 곧 유럽 교회들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모여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일부인 복된 모임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들에게 줍니다. 의미없는 만남을 경계하는 축일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두 믿음의 여인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는 일을 보여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의 어떤 만남도 우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일부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