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을 알아야 하느님의 종

<연중 9주일 말씀 묵상> …………. (공동번역 개정판)

{ 구약 } 사무엘상 3장 10-13절 …. [10] 그러자 야훼께서 거기에 나타나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이 “야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1]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들어라. 내가 이제 이스라엘에서 무슨 일을 할 터인데, 듣는 사람마다 가슴이 내려앉으리라. [12] 그 날이 오면, 내가 엘리와 그 집안을 두고 말한 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지리라. [13] 너에게 알려주거니와, 나는 엘리의 가문을 심판하여 끝내 벌하고야 말겠다. 그것은 제 자식들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 엘리는 직급이 성전의 사제(제사장)이었는데, 수천 명의 사제가 교대로 사제직을 수행하던 예수님의 시대와는 달리, 실로의 장막의 제사를 관리하던 엘리 사제는 대제사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위성직에 앉아 있으면, 하느님 앞에 겸허한 성직자가 되기 힘듭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앞에서 굽신거리니까, 자기가 잘나서 그러는 줄 착각합니다. 더 크게 착각을 하고 있던 자들이 있었는데 엘리 사제의 두 아들이었습니다.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두 아들, 곧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의 시종을 시켜서, 성막의 제물들을 자기 집 육곳간의 고깃덩이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어느 때든 생고기를 꺼내다 구워 먹었습니다.

이런 불손한 짓거리를 보다 못해서, 하나님께서 엘리의 집안을 말끔히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관한 예언을, 기도의 어린이, 사무엘에게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느님의 예배당을 자신의 돈벌이 흥행터로 취급하는 이들이나, 하느님 앞에 모여드는 회중을 자기 밥벌이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자들은, 때가 이르면 하느님께서 호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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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르코 복음서 3장 2-5절 ……. [2] 그리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기만 하면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는 “일어나서 이 앞으로 나오너라.” 하시고 [4] 사람들을 향하여는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말문이 막혔다. [5]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탄식하시며 노기 띤 얼굴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펴자 그 손은 이전처럼 성하게 되었다.

*** 안식일은 왜 있습니까? 안식, 곧 일하지 말고 평안히 쉬라는 날로 안식일이 제정되었겠지요. 하지만 쉬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쉬면서 창조 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튼튼한 기계일지라도 쉬지않고 작동시킬 수는 없습니다. 인간도 살아가는 동안에 몸과 정신과 영혼이 본 궤도를 이탈하여 고장이 날 때가 있습니다. 몸과 정신도 고장이 날 수 있지만, 인간의 영혼이 고장나면 상태가 심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안식일을 정하셔서, 이 안식일에 창조 때의 본 모습을 인간이 회복할 수 있게 하여, 다시 올바른 작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복된 안식일을, ‘일을 하지 말라’는 데에만 중점을 두어, 안식일에 일하지 않기 위한 수백 가지의 복잡한 시행세칙을 만들어 이를 준수할 것을 강요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안식일 모법의 제정자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실 때에, 안식일을 참된 영혼의 안식의 날이 되게 하기 위해 외식주의자들을 경계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오히려 바삐 다니시며 병자들을 고치셨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몰아내셨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트집잡아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막 3:6)

오늘날도 우리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들 가운데, 안식일에 사람들을 회복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영혼을 부자유하게 옭아매는 규정들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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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고린도후서 4장 5, 10-11절 …… [5] 우리가 선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고 우리는 예수를 위해서 일하는 여러분의 종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 [10] 이렇게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예수를 위해서 죽음의 위험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의 생명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하느님의 구원역사의 심부름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인간의 시대가 우리를 부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시대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뜻과 손길을 바라보는 성령의 민감함을 지니지 않고는 하느님의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왜 성경이 고대문서가 아니고, 오늘 우리 시대에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인 것인지를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하느님의 뜻을 기도생활 가운데 기민하게 알아차려, 하느님의 구원역사 속에서 한 가닥 역할을 하도록 복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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