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이상신 생생성경)
{ 만도 2과 } 마태복음 15장 7-11절 ……. [7] “이사야가 당신네처럼 겉만 그럴듯하게 가장하는 자들에 대해 예언하였는데 정말 잘 [표현]하였소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지만 저희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도다 [9] 아무 목적 없이 나를 경배하는데 사람의 교훈과 명령을 가르치는 자들이 그렇게 하는구나’” [10] 그리고 그분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모두들 내 말을 귀담아듣고 집중해서 깨달으십시오 [11] 사람을 불결하게 만드는 것은 그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불결하게 합니다”
{ 감사성찬례 복음 } 마가복음 12장 38-40절 …….. [38] 또 그분이 가르칠 때 하신 말씀이다 “서기관들을 주의해서 멀찌감치 떨어지게하십시오 저들은 [권위적인] 긴옷 차림과 시장에서 인사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39] 또 수나고게(*회당)에서는 특석과, 만찬에서는 상석을 좋아합니다 [40] 저들은 과부의 집을 털어먹는 자들이고 체면을 의식해서 길게 기도합니다 저들은 누구보다도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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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사순절 찬송 중에 “절제와 근신함으로 교회 위해 힘 기르세” (성가 188장)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절제와 근신이 교회의 힘을 기른다는 확신에서 나온 가사일 터입니다.
왜 우리가 이웃을 향해 과감하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를 못합니까? 전에는 용맹히도 전도를 잘 하던 그리스도인들이 그 기백을 잃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의 거친 분석으로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불신자들에게서 말없이 듣는 ‘너나 잘 믿으세요’ 라는 가상의 음성이 너무도 크게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연 나는 그리스도인이 맞나? 남들보고는 예수 믿으라고 하는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이 자문자답하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을 못하는 내가, 전도를 어떻게 하지, 라고 묵묵히 포기하는 것입니다.
먼저 절제와 근신, 특별히 악마와 정면대결하는 경건의 훈련을 쌓아가는 동안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그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날마다 힘을 주실 때에 우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설 줄 믿습니다.
( 2 ) 신앙생활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 그렇게 하는 삶을 낙으로 여기는 이들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가는, 금방 낙심을 하고 믿음을 잃기가 쉽습니다.
“나의 반석 나의 몸값을 지불하시는 분 여호와여 주님 앞에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을 즐거이 받아 주소서”(시 19:14) 라는 시구가 있습니다. 나의 입의 기도과 증언이 내 마음의 묵상과 일치하는 것이라면 그때에 나의 기도와 증언은 힘이 있을 것입니다.
( 3 ) 마태복음 22장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맹렬히 비난하시는 예수님의 질타가 적혀 있습니다.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영혼의 눈이 뜨인 사람들은, 자신의 위선을 정확하게 의식하고 회개할 것이고, 다른 사람의 위선도 금방 알아봅니다.
그러나 워낙 위선에서 시작하여 직업적 위선으로까지 발전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지배계층으로 살고 있어서,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을 가릴 생각 뿐이었지, 회개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평화가 없이, 표리부동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습관상의 종교인들을 향해, 회개를 종용하시는 말씀들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마음에서 우러난 찬송을 부르고, 마음에서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게 하옵소서. 저희의 심령을 보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늘 주장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