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든 말든, 너는 내 말을 전하라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개역개정판)

{구약} 에스겔 2장 1-7절 …… [1]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2]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4]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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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인 두보의 ‘춘망’(봄의 소망)이란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 … ”. 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라는 망해도 산과 강은 여전하고, (장안)성에 봄이 오니 풀과 나무가 무성하다’ 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 하에 살던 우리나라 대표시인 김소월은 이 시를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나라는 부서졌는데 여태 산천은 남아 있더냐. 봄은 왔다 하건만 풀과 나무에 뿐이구나.” 역시 서정시인답게 민족의 아픔을 담아, 이 시를 번역했습니다.

주전 722년에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주전 586년에 유대마저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 당하고, 뜻있는 사람들은 모두 포로로 바벨론으로 붙들려 가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역사를 살아가던 때에, 예언자 에스겔은 고국산천을 떠나 타국 땅을 맴돌며, 나라의 운명을 탄식하던 예언자였습니다.

소망의 내일을 바라보기보다, 망국의 운명에 빠지게 된 연유를 철저히 신앙의 상실에서 찾고자 했던 비판적 입장에서 예언활동을 한 에스겔은 각 가지 문학 장르의 형태를 빌려, 그의 독특한 예언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신앙의 지조를 지키지 않았던 유대민족을, 바람난 탕녀에 비유했고(겔 23장),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할 때에는 여러 가지 환상을 나열한 묵시문학의 형태를 뜨이기도 했습니다.(겔 34, 37장)

한국전쟁 직후의 한국교회는 에스겔서의 예언을 많이 묵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별히 1950년대와 60년대에 산골짜기마다 세워진 기도원들은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에스겔서의 탄식과, 자책과, 슬픈 애가들을 인용하면서, 미래에 올 건실한 교회의 회복과 이에 따른 교회 지도자의 책임들에 관해 묵상했습니다.

어느덧 두 세대가 지나고, 지금 또 다시 에스겔서를 들여다보는 저의 심정은 장차에 우리 땅에 다시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을 예상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과연 이 나라가 하나님의 매를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이 나라 방방곡곡에 세워진 교회들이 축복의 통로가 아닌, 심판의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에게 이런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스로 사람들을 기절시키고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는 강도의 환상입니다. 이 가스강도단이 달려들어 온 국민들을 기절시키고 유린하는 대형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주 성령 하나님이시여, 이 불쌍한 국민을 깊은 잠에서 깨워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이 위난에서 구원하소서. 에스겔의 경고를 저희가 듣게 하옵소서. 나라없이 2천 년을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지 않도록 저희를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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