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표방하고, 성령과 함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서신 } 코린토스 <I> 서간 1장 17-18, 20-23절 …. [17] 그리스도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18] 멸망할 무리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입니다. … [20] 지혜로운 무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21] 세상은 하나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어리석게 보이는 복음 선포를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 복음 } 마테오 복음서 25장 1-10절 …. [1] “그때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 열 명에 비길 수 있을 것이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 잠이 들었습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간청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그대 기름을 나누어주게.’ 했답니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대답하기를, ‘안 된다. 우리도 여러분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했습니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소.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 == — == *

( 1 )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 올라 처형장에 도착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세우는 구멍 주위에 시커멓게 피떡이 얼룩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겁게 어깨에 메고 올라온 십자가, 지금은 땅에 뉘여있는 십자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못박혀 공중에 매달릴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며 혼자 마음 속으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너희, 십자가를 바라보게 될 인간들이여, 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너희는 정녕 하나님을 뵙게 되리라. 그리고 또 너희 자신의 모습도 보게 되리라.’

( 2 ) 바울 만큼 학식 있는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 만큼 구약성경에 정통한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회심하고 난 후, 자신이 만났던 메시아이신 예수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다른 사람도 예수를 알게 되고 믿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반발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왜 반발을 하는 것일까?’ 그는 한없이 이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인데, 사탄이 이것을 가장 싫어하는 일이므로, 있는 힘을 다해서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사탄과 사탄의 졸도들이 작간을 부릴 것이라는 발견이었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데에는, 철학도 문학도 다 소용 없고, 다만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후로,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할 때마다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 3 ) 마태복음 25장은 ‘다시 오시는 날’의 약속을 다지시며, 인류에게 당부하신 예수님의 세 마디 말씀을 비유로 설명하신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첫째 이야기 곧 ‘어리석은 다섯 처녀와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이야기가 오늘의 복음본문입니다. 등잔만 지니고 있지 말고, 기름을 준비해야 신랑이 오는 시각에 등불을 켜고 맞이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름을 준비한다는 것은, 평소에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평소에 성령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사는 사람은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에 반가이 나아가서 맞이할 수 있지만, 평소 성령과 관계없이 살던 사람은 신랑이 오는 날이 그립지도 않고, 너무도 생소한 일이어서, 당황스럽기만 할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들이 날마다 십자가를 삶의 지표로, 성령 안에서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렇게 주님을 뵙는 날까지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