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감화가 교회의 동력

<요한 크리소스톰 기념일,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서신 } I 고린토 9장 16-17절 … [16]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만일 내가 내 자유로 이 일을 택해서 하고 있다면 응당 보수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 자유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주신 것입니다.

{ 복음 } 루가 복음서 6장 39-42절 …. [39] 예수께서는 또 이렇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소경이 어떻게 소경의 길잡이가 될 수 있겠느냐? 그러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을 수는 없다. 제자는 다 배우고 나도 스승만큼밖에는 되지 못한다. [41] 너는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면서도 어째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 하느냐? [42]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더러 ‘네 눈의 티를 빼내 주겠다.’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꺼낼 수 있다.”

* = * ( 1 ) 저는 기독교 TV 채널의 예배 프로그램을 보다가, 여러 교회들의 성가대를 유심히 관찰하곤 합니다. 성가대원이 많은 교회들이 부럽기 때문입니다. 재정이 넉넉하니까, 성악 전공자들을 많이 동원한 것이겠지 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고, 성악전공자건 비전공자건, 자발성 있는 성가대원들이 단연코 절대다수로 보이는 성가대들도 있는 것을 봅니다.

그때마다 저의 관심은 신도들의 자발성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곤 합니다. 물론 성도들의 책임감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책임감이나 자발성의 저변에는 말씀의 감화력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라고 결론짓곤 합니다.

그것은 비단 성가대 뿐 아니라, 교회학교와, 교회의 각급 활동단체와 성도들 사이의 유기적 연합과 액션이 모두 ‘말씀의 동력’에서부터 힘을 얻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 2 ) 설교자는 말을 잘해서 강단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전하는 긴급한 소식을 전할 사명을 주셔서 강단에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항상 기도로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말씀’으로, 즉 모든 영혼을 격동시키고, 깨워 일으켜, 하느님의 군사들로 동원해 내도록 설교자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냉랭한 가슴들에 불을 지펴, 성령의 감화를 일으키고, 변화와 헌신의 결단으로까지 이끌어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 3 )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7? – 407)을 오늘 세계교회는 기념합니다. ‘크리소스톰’이라는 이름 자체가 ‘금으로 만든 입’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위대한 설교자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말재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전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때에 그는 수도자로 산중에 들어가 금욕생활, 은둔생활을 힘썼습니다. 40세 무렵, 그는 사제가 되어 시리아의 안디옥(오늘날의 튀르키예의 안타키아)에서 10년 이상 목회했습니다. 특별히 그의 신구약성서 연구는 탁월하여, 그가 설교를 시작하면 하느님의 말씀이 생동력있게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습니다.

또한 주저함 없이 권력자들의 불법을 지적했으므로, 요한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횡포스런 황실과 부도덕에 빠져 있던 권력자들에게 미움을 사서,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황실은 주교회의를 수차례 소집하여 요한을 탄핵했고, 그는 더 오지인 이베리아로 유배 당해 가던 중 별세했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하느님의 말씀을 생명력있게 전하기 위해 일생 정성을 다하던 요한 크리소스톰을 교회에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날의 모든 설교자들이 그를 본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으로 전하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고, 온 교회로 늘 활력에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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