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언어, 살리는 언어

<연중 24주일,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이사야서 50장 4-6절 …. [4] 주 야훼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신다. [5] 주 야훼께서 나의 귀를 열어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아니하고 꽁무니를 빼지도 아니한다. [6]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턱을 내민다. 나는 욕설과 침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

* = * 이 본문은, 이사야서에만 나오는 ‘고난 당하시는 하느님의 종’을 주제로 한 네 편의 노래 가운데 맨 마지막의 노래입니다.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하시면서도, 끝까지 인내하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인간들의 온갖 못된 소리를 들으시면서도, 끝까지 그 굴욕을 참아 넘기시는 메시아의 모습에서, 세속의 풍습으로, 말할 수 없는 욕을 당하더라도 성도들은 인내와 용서의 모범을 보임으로, 언어생활을 바로잡아야 함을 배웁니다.

* == — == *

{ 성시 } 시편 19편 11-14절 …. [11] 당신 종이 그 말씀으로 깨우침 받고 그대로 살면 후한 상을 받겠거늘 [12] 뉘 있어 제 허물을 다 알리이까? 모르고 짓는 죄일랑 말끔히 씻어주소서. [13] 일부러 범죄할까, 이 몸 막아주시고, 그 손아귀에 잡힐까, 날 지켜주소서. 그제야 이 몸은 대역죄 씻고 온전히 깨끗하게 되리이다. [14] 내 바위, 내 구원자이신 야훼여, 내 생각과 내 말이 언제나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 = * 레위기 22장 19-20절에 보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제사 제물이’ 따로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언어가 아무리 정제되었다고 자부하더라도, 하느님의 마음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경계에 경계를 힘써야 합니다.

아무리 경건한 어휘를 구사했다 하더라도, 마음 근저에 하느님을 향한 깊고 참된 경외의 심정을 지니지 못했다면 그런 기도를 하느님께서 귀기울이실까요?

* == — == *

{ 서신 } 야고보서 3장 8-12절 …. [8] 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휘어잡기 어려울 만큼 악한 것이며 거기에는 사람을 죽이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9] 우리는 같은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0]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내 형제 여러분, 이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11] 같은 샘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이 함께 솟아 나올 수 있겠습니까? [12] 내 형제 여러분, 무화과나무에 어떻게 올리브 열매가 달릴 수 있으며 포도 덩굴에 어떻게 무화과 열매가 달릴 수 있겠습니까? 짠 물에서 단 물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 = * 예배에서는 하느님 앞에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예배를 방금 마치고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이웃을 헐뜯는 말을 내뱉는다면(본문 9절), 이는 진실로 하느님께 욕을 보이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성도들의 입은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입이므로, 예배자답게 평소 사람들과 섞여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성도들의 입으로 정결하지 못한 말을 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 == — == *

{ 복음 } 마르코 복음서 8장 34-38절 …. [34]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35]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36]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37] 사람이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38]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 = * 우리들의 입이 이웃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도 있고, 이웃을 저주하여 죽이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입도 예수님을 닮아 생명의 말씀을 전합시다.

<기도> 주 하느님, 구하오니, 성령께서 저희의 마음과 입을 늘 주장하시어, 저희 언어가 남을 용서하고, 격려하며, 소망을 주는 언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 == — == *

<<정정>> 어제 ‘묵상’ 끝에서 두 번째 단락에, 괄호 뒤에 ‘콘스탄틴 황제’를 ‘헤라클리우스 황제’로 바로잡습니다. 죄송합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