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 개정판)
{ 서신 } 갈라디아서 3장 23-27, 29절 …. [23] 믿음의 시대가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의 감시를 받았으며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24]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후견인 구실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에는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25] 이렇게 믿음의 때가 이미 왔으니 우리에게는 이제 후견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 [29]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따라서 약속에 의한 상속자들입니다.
* = * 부모 자식 간에 규율을 세워 놓고, 규율을 지키는 한, 부모가 자기 자식으로 여겨주겠다고 한다면, 그건 부모 자식 간의 정상적 관계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부모 자식 사이에는 서로 신뢰하는 것으로 부모-자식의 정상적인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규율이 없이, 부모가 자식을 믿어주고, 자식이 부모를 신뢰하는 것, 이것이 부모-자식 간의 옳은 관계이지요.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령을 듣고, 사랑하는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러 모리아 산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아들 이사악의 마음에 자기가 그 날의 제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털끝만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윽고 제단을 만들고 장작을 쌓아놓은 후, 제물을 잡을 때가 되자, 아버지 아브라함은 어린 아들의 귀에 대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제물을 잡아바치라고 하셨다. 내가 부탁한다. 양처럼 잠자코 조용히 있어야 한다.”
이사악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며, 또 지금껏 아버지와의 깊은 사랑을 믿으며, 숨막히는 아버지의 결행을 따르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장작더미 위에서 눈을 감고 칼이 자기 몸을 찌를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칼을 든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도 하느님께서 보고 계셨지만, 그의 아들 이사악의 믿음도 보고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던 그날 제사에 쓰일 제물을 보게 하셨습니다. 덤불에 걸려 발버둥치던 염소였습니다.
{ 만도 1과 } 사도행전 25장 23-25절 …. [23] 그 이튿날 아그리빠와 베르니게는 모든 위엄과 격식을 갖추어 무관들과 그 도시의 명사들을 거느리고 공청실로 들어갔다. [24] 그 때 페스도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그리빠 전하,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바울)에 대하여 예루살렘과 가이사리아에 사는 모든 유다인들이 나에게 고발해 왔습니다. 그들은 이 자를 더 살려두어서는 안된다고 떠들어댑니다. [25]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사형을 받을 만한 죄는 하나도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황제께 상소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황제께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 = * 율법주의자들의 세계인 예루살렘에서 ‘엘리트’로 인정받던 청년 사울은 율법준수에 있어서 누구보다 철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율법의 시대를 벗어나, 믿음의 사람으로 살기 시작한 이래, 그의 삶은 전혀 새로운 궤도로 가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접근방법으로는 알 수가 없었던 하느님의 마음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래서 다메섹에 살던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구원역사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고,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는 ‘죽일 놈들’이라고 판정이 난 사람들과 더불어 의기투합하며 함께 협력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로지 아브라함처럼, 또는 이사악처럼, 믿음으로 하느님께 접근하는 사람들 만이 깨닫는 하느님의 뜻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이방인들의 낯선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돌팔매질 사형을 당해 죽을 뻔했는데도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였고, 다시 기운을 차려 십자가복음을 전하려고 동분서주했습니다.
죽을 각오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믿음으로 한 일입니다. 로마로 갔습니다. 믿음으로 한 일입니다. 거기서 끝내 목숨을 바쳐 복음을 증거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믿음으로 한 일입니다. 율법의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 의하여 2천 년 동안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역사의 현장이 되어 왔습니다.
믿음은, 인간이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드리려고 마음쓰는 것을 말하고, 이것을 보고 하느님께서도 인간의 마음을 알아주십니다. 이것을 믿음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날마다 하느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 드림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