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표준새번역 개정판)
{ 복음 } 누가복음서 13장 22-27절 …. [22] 예수께서 여러 성읍과 마을에 들르셔서, 가르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물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고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할 터이나, [27] 주인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모두 내게서 물러가거라’ 할 것이다.
* = * ( 1 ) 이 본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좁은 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앙드레 지드’(Andre Gide, 1869-1951) 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좁은 문’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알리사라는 젊은 여인과 그를 사랑하는 제로옴 이라는 청년 사이에, ‘혼인의 묶임이 영적 성숙을 이루는 데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종내 그들은 결혼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는 스토리입니다.
그래서 알리사는 수녀원으로 들어가 수녀가 되고 종신서약을 하지만 신체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점점 쇠약해지다가, 사망하고 맙니다.
제로옴은 기독교 신앙과, 부부의 육체적인 사랑이 서로 상충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아무런 해답을 얻지 못하고, 슬픔과 혼란에 빠진 채, 알리사를 사별하고 맙니다.
이 이야기에 ‘좁은 문’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 저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수녀가 되는 것이 ‘좁은 문’으로 인식된다는 것 자체도 불만이었고, ‘좁은 문’의 의미를 바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신랑으로 삼고, 평생을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바치겠다’고 했으면 그것으로 복된 일생일 것으로 여기는 것이 수녀의 길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좁은 문’으로 인식하는가가 의문스러웠던 것입니다.
( 2 ) 또 한 분의 생애를 생각해 봅니다. 그분은 존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레(Susanna Wesley, 1669-1742)입니다. 그분은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년이 되어 사무엘 웨슬레 라는 청년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후 열아홉의 자녀들을 낳았는데, 살림이 가난했고, 당시의 의학이 별로 발전된 상태가 아니어서, 그 중 절반 정도는 성년이 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하지만 수산나는 남아있는 열 명 정도의 자녀를 기독교 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으로 보람을 삼고, 일념으로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생활을 지도하며 그들이 모두 교회의 기둥들이 되게 했습니다.
특별히 존 웨슬레(열다섯째 자녀이며 둘째 아들, 성공회 사제이며 감리교 창설자)와 챨스 웨슬레(열여덟째 자녀이며 셋째 아들, 찬송가 작가)는 기성교회의 복음화를 위해 평생 일했습니다.
어머니 수산나는 한 가정의 주부로서 자식낳이를 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행복의 추구’나 또는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를 않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당연한 사명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 어렵던 주부의 일을 ‘좁은 문’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당하고 기꺼이 자신의 즐거운 책임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 3 )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사명을 신실히 감당하며 살려면, 더러는 순탄한 생애를 사는 이들도 있지만, 사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저항을 돌파하며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적당히 사탄의 계책에 타협하며 사는 삶을 ‘넓은 문’이라 한다면, 사탄의 흉계에 굽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싸워 이기며 사는 삶을 ‘좁은 문’이라 하겠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성령의 도우심으로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사탄의 시험도 이기며 씩씩하게 전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