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표준새번역 개정판)
{ 서신 } 필립보서 2장 15-18절 …. [15]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달음질한 것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여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18]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 복음 } 누가복음서 14장 28-33절 …. [28] “너희 가운데서 누가 망대를 세우려고 하면, 그것을 완성할 만한 비용이 자기에게 있는지를, 먼저 앉아서 셈하여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29] 그렇게 하지 않아서, 기초만 놓은 채 완성하지 못하면, 보는 사람들이 그를 비웃을 것이며, [30] ‘이 사람이 짓기를 시작만 하고, 끝내지는 못하였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서 자기에게로 쳐들어오는 그를 자기가 만 명으로 당해 낼 수 있을지를,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32] 당해 낼 수 없겠으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청할 것이다. [33] 그러므로 이와같이, 너희 가운데서 누구라도,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 * 영적 싸움은 육신의 싸움에 비길 수 없이 힘든 싸움입니다. 무모하게 그저 돌진한다고 이길 수는 없습니다. 백전노장인 다윗마저 영적 전쟁에서 참패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의 서신과 복음의 말씀들이 용의주도한 사람들 만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붙잡은 사람” 만이(필 2:16), ‘임전 태세를 미리 갖춘 사람’ 만이 승리할 것(눅 14:28-31 참고) 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용의주도하게 복음으로 승리한 사람 세 분을,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합니다.
* 1 * 일터드 수도원장 (Illtud, ? – 530) : 그는 주후 5세기 중엽 영국 브리타니 지방에서 출생했습니다. 과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 양질의 교육을 받았던 듯합니다. 수업을 마친 후, 그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학문적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아더(Arthur) 왕 때에, 그는 고향 브리타니를 떠나 군대경력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후 그는 뜻이 있어, 왕실의 법정의 판사직을 사퇴하고, 사제 안수를 받은 후, 교회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후 그는 수도원을 건립하고, 수도원 내에 학교를 설립하여 수도원과 학교의 학과 일정을 분리하여, 진행했습니다. 기도시간, 성경공부, 공예 등의 일과를 부여했고, 수도원 내 경작지에서 농사를 짓게 했습니다.
이렇게 영국 수도원을 곳곳에 개척하면서 자기 몸을 혹사하다가 주후 530년 돌(Dol)에 그가 설립한 수도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 2 * 레나드 은둔수도자 (Leonard, ? – 주후 6세기) : 그의 이름이 유럽 일대(프랑스, 영국, 독일)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주후 11세기였습니다. 그의 일대기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그가 은둔생활을 하는 수도자였다는 것과, 그의 생애에 많은 이적과 기사들을 행했다는 것, 그리고 노블락( Noblac, 오늘의 프랑스의 Saint-Leonard) 지방에 수도원을 설립했다는 정도의 고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특별히 십자군 원정에 가담했다가 귀향하던 상이군인들과 지친 군인들을 간호하고 돌보았다는 사실이 십자군 귀환자들의 보고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그의 이름이 ‘죄수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3 * 윌리엄 템플 대주교 (William Temple, Archbishop of Canterbury, 1881 – 1944) : 그는 영국 엑서터(Exeter) 태생으로 그의 아버지는 캔터베리 대주교에까지 올랐던 ‘프레데릭 템플’ 대주교였습니다.
윌리엄은 옥스포드에서 교부신학(기독교 초기 7백여 년 간의 신학)과 철학에 심취했습니다. 그가 옥스포드의 퀸스 칼리지의 교목으로 일하면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연구에 집중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맨체스터의 주교와 요크대주교를 역임하면서 그는 ‘기독교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교회지도자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신앙이 개인영혼을 구원하는 일 못지않게, 사회문제, 곧 빈곤의 문제, 사회적 불평등, 노동 문제에 교회가 관심해야 할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1942년에 캔터베리 대주교에 올랐고, 2년 후인 1944년에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사후 4년 만인 1948년 창립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의 전초작업에는 그의 공로가 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 교회가 개인영혼의 구원에 관심하는 것 못지 않게, 사회에 편만한 무지와, 세속주의, 그리고 불의와, 부패를 물리치는 일에도 열심을 품도록 성령님의 인도를 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