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에 구원을 받을 자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루카 복음서 17장 27-30, 34-35절 ….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했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습니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했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습니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오. …. [34]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노니,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오. [35] 두 여인이 함께 맷돌을 돌리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오.

* = * 한 해가 저무는 이무렵, 교회력은 이 해를 마감하며, 인류의 역사를 마감하는 날에 대비하는 훈련으로, 성경에 쓰여진 종말을 예언하는 말씀들을 읽도록 편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치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악한 것인처럼 쓰여져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표현은 종말의 때가 무슨 비상시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들이 여전히 태평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아무 준비를 할 예고도 주지 않고, 갑자기 들이닥칠 것이라는 뜻에서 하는 말씀입니다.

한국동란 때, 공산군이 압록강까지 패퇴함으로 이윽고 중공군이 개입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피난을 해야겠다고 아버지가 결심을 했습니다. 저희 일곱 식구가 평양 대동강 건너편에 살고 있었던 작은아버지네 집으로 온 식구가 갔습니다.

저희 작은아버지네도 저희 집 처럼 식구가 일곱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그 집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대동강 모래사장에 유엔군이 잔뜩 쌓아놓았던 탄약을 모두 폭파시키는 통에 시끄러워서 밤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날이 밝자 평양 시민들은 탄약고를 태우는 것을 보고 중공군이 가까이 접근했다는 눈치를 채고 일제히 피난을 떠났습니다. 저희 가족과 작은집 가족 열 네 명은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같은 솥에 아침밥을 지어 먹고,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날로 운명이 갈라졌습니다.

저희는 어느 누구도 짐보따리를 지니지 않아서 걸음이 빨라 중화, 사리원을 거쳐 개성, 서울로 달려 왔지만, 작은집은 살림을 지고 떠나는 통에 걸음이 느려서 그만 안타깝게 낙오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집에서 밤잠을 잤다고, 또 같은 솥에 아침밥을 지어 먹고 떠났다고 같은 운명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 말씀(35절)은, 여인네들이 맷돌질을 할 때에 같은 맷돌자루를 잡았다고 해서 운명이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평소에 ‘성령님을 모시고 살던’ 사람은 구원의 백성이 될 것이고, 같은 맷돌자루를 잡았어도, ‘성령님을 모시고 살지 못했다면’ 그는 구원에서 낙오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마테오 복음서 25장 1절 이하에 나오는 ‘처녀 열 명의 비유’에 나오는 말씀을 토대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 서신 } 요한의 둘째 편지 1장 7절을 보겠습니다. “남을 속이는 무리가 세상에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무리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속이는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러 보내신 분임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기어이 구원의 백성들을 속여 빼앗아 가기 위해서 별별 속임수를 다 쓰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의 설교로부터 사도 바울의 설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도들의 다양한 설교와 간증이 소개되어 있고, 어떤 곳에는 제목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예외없이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는 것이 모든 설교의 골자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소망 있는 삶의 길을 가게 하시고, 비록 말세의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맞닥뜨리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그 진노를 벗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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