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관 쓰신 왕, 우리 예수님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다니엘 7장 9-10, 13-14절 …. [9] 내가 바라보니 옥좌가 놓이고 태곳적부터 계신 이가 그 위에 앉으셨는데, 옷은 눈같이 희고 머리털은 양털같이 윤이 났다. 옥좌에서는 불꽃이 일었고 그 바퀴에서는 불길이 치솟았으며, [10] 그 앞으로는 불길이 강물처럼 흘러 나왔다. 천만 신하들이 떠받들어 모시고 또 억조 창생들이 모시고 섰는데, 그는 법정을 열고 조서를 펼치셨다. …. [13]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곳적부터 계신 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14] …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 = * 다니엘서는 요한묵시록처럼 묵시문학입니다. 읽어서 뜻을 깨닫는 사람 만이 무슨 말씀인지 파악할 수 있는 글입니다.

많은 사람의 의견으로는, <9절>의 ‘태곳적부터 계신 이’ 라 함은 성부 하느님을 말하고, 하느님의 옥좌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불길’은 성령을 말하며, <13절>의 ‘사람 모습을 한 이’는 아람어로 ‘케바르 에나쉬’(‘사람의 자손과 같은’의 뜻, ‘인자’라고도 번역함)라는 숙어로서, 장차 임하실 메시야를 의미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별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구약 속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존재구조를 설명하는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가리키는 이 칭호(‘인자’)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 서신 } 요한묵시록 1장 5-6절 …. [5] 그리고 진실한 증인이시며, 죽음으로부터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며, 땅 위의 모든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피로써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6] 우리로 하여금 한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또 당신의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서 영광과 권세를 영원무궁토록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 = * 제가 잘 아는 친구성직자가 있습니다. 그가 맡고 있었던 교회는, 설립된지는 오래이지만, 주민이 많지 않은 동네에 있어서, 그는 근근히 생활하고 있었고, 교회의 자동차도 중고소형차였습니다.

성직자 인사이동이 있어서, 그는 다른 개척교회를 맡게 되었고, 먼저 있던 교회에는 새로운 후임자가 오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 후임자가 그만 그 중고차로 지방도로에서 접촉사고를 냈습니다.

갓 부임한 이 후임자는 아직 자동차 명의를 변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의 피해자는 피해보상을 전임자인 제 친구성직자에게 요청했던 것입니다.

보상금 지불을 재촉하고 있었고, 후임자는 재정능력이 없다고 발을 빼는 통에, 도리없이 전임자인 제 친구성직자가 돈을 주선해서 지불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그럴 수가 있느냐고.. 정말 제가 나서서라도 일을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전해 준 사람의 말이,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그 말이 사람을 살리는 말이 아닐 때에는, 안 하는 것이 십자가복음의 정신이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 친구성직자의 입장이 억울했다 해도, 그의 선택이 사람을 살리는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가 진정한 성직자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다운 이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복음 } 요한 복음서 18장 36-37절 ….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37] “아무튼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 = * 빌라도의 질문, ‘네가 왕이냐?’라는 질문은 세속적인 의미의 정치적 통치자 범주의 대답을 예수님의 입에서 유도하여, 그를 로마 권력에 맞서는 자로 규정해서 처벌하려는 의도로 질문한 것입니다.

‘하늘의 진리의 왕’이신 분도, 세속의 권력자들이 이토록 ‘사람 죽이는 틀’에 끼워 죽입니다. 비록 가시면류관을 쓰셨어도, 알아보는 사람들은 그분이 ‘왕중의 왕’이심을 압니다.

<기도> 왕이신, 우리 예수님이시여,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본받아 살지도 않으면서, 주님을 향하여 ‘우리의 왕, 우리의 왕’ 하지 말게 하옵소서. 사람을 살리는 말과 삶으로 왕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내며, 예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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