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표준새번역 개정판)
{ 조도 정과 } 스가랴서 12장 3, 4, 6, 8, 9-10절 …. [3] 그 날에, 세상 모든 이방 민족이 예루살렘에 대항하여 집결할 때에, 내가 예루살렘을 바위가 되게 할 것이니, 모든 민족이 힘을 다하여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 [4]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말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할 것이다. … 모든 이방 민족이 부리는 말들을 쳐서 눈이 멀게 하겠다. … [6] 그 날에 내가, 유다의 지도자들을, 나뭇단 사이에 놓인 과열된 도가니처럼, 곡식단 사이에서 타는 횃불처럼 만들겠다. 그들이 주변의 모든 민족을 좌우로 닥치는대로 불사를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다치지 않고 제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 [8] 그 날에 나 주가 예루살렘에 사는 주민을 보호할 것이니, 그들 가운데 가장 연약한 사람도 그 날에는 다윗처럼 강하게 될 것이다. … [9] 그 날이 오면, 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모든 이방 나라를 멸망시키고 말겠다. [10] 그러나 내가,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구하는 영’과 ‘용서를 구하는 영’을 부어 주겠다.
* = * 기독교 신앙은 과거에 매인 것이 아닙니다. ‘그 날’(장래에 올 하나님의 날’)을 향하여 꿈을 꾸면서, ‘그 날’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오늘을 믿음으로 인내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삶을 드리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공통된 자세입니다.
스가랴서 12장과 13장은 구약의 예언서의 대표적인 표제, ‘그 날에’(히브리어로 ‘바욤’, 영어로 ‘On the day’), 또는 ‘하나님의 날’(히브리어로 ‘욤 야훼’, 영어로 ‘the day of God’) 이라는 용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지구상의 시간으로 표시할 수 없는,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그 때가 언제일는지는 오직 하나님 만이 아십니다.
이 ‘하나님의 날’의 신앙은 심판과 구원이 결정적으로 성취되는 날로서, 악인에게는 심판이,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종말’ 또는 ‘재림의 날’이라는 용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인류의 역사가 끝을 맺는 날이라는 개념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불의와 죄와 사탄의 일들이 흐지부지 끝날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고, 이들 악한 세력의 징벌은 영원히 취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간 선량한 의지의 사람들은, 그 모든 누명과 억울함이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스런 광채 속에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끝날의 이런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는 때가 ‘그 날’이요 ‘하나님의 날’입니다.
현대 신학자 떼야르 드 샤르뎅은 이 ‘하나님의 날’을 자신의 독창적인 용어로 ‘오메가 포인트’라고 호칭했습니다. ‘시간의 마지막 시점’ 이라는 뜻입니다. 그 때에 ‘우주의 진화와 세상 역사의 영적 완성이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임’ 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물질적 진화의 끝이라는 말이 아니고, 영적이며 초월적인 완성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어떻든, 영생을 믿는 사람들은, 사랑하던 부모와 가족, 또 사랑하던 어르신들과 친구들을 죽음의 장벽이 영원히 갈라놓지 못함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필연코 예수님의 얼굴을 뵙고, 믿음의 권속들도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 속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죽음과 파멸의 날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날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의 날’을 향하여 하루 하루 가까이 다가가며 살고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과 그립던 모든 믿음의 권속들을 영원한 나라에서 다시 만날, 감격스런 믿음 속에 저희가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