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 개정판)
{ 만도 2과 } 루가 복음서 1장 38-45, 58절 …. [38]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39] 며칠 뒤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40]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42]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43]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44]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45]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 [58]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 *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만난 자리에서, 하느님께로부터 선택 받은 여인으로 메시아를 잉태케 된다는 전언을 받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후 얼마의 기간이 지나, 마리아는 그녀의 몸에 신비롭게 아기를 잉태한 증상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태중에 아기를 가지게 되면, 장차 자기의 몸에서 태어날 아기가 어떻게 생긴 아기일까를 상상해 보게 마련입니다. 마리아 만큼 놀라운 상상을 많이 한 어머니가 세상 역사에 또 있었을까요?
제가 만약 마리아였다면,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예사로운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날마다 별의별 상상을 다 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참고성경구절로 다니엘서 7장 13절을 보았을 것입니다: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곳적부터 계신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여기에 ‘사람 모습을 한 이’(원문 ‘케바르 에나쉬’)라고 칭한 것이 메시아의 이름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구절을 백 번도 천 번도 들여다 보았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닮았는데 태곳적부터 계신이와 소통하시는 분이시다?’ 이 무슨 수수께끼 같은 말씀이란 말입니까? 자기 태중에 잉태한 아기의 모습을 자신도 상상하기 어려운 숙제로 열 달 동안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밖에, 이사야서(9:6)의 메시아 예언은, “그의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만 가지고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존재인 분이라는 것 이상의 더 구체적인 ‘모습의 힌트’가 없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에는 “한 다스릴 자” 라고 했고, 스가랴서 9장 9절에는 “겸손하여 나귀를 타실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들이, 메시아가 어떤 능력과 성품을 지니신 분인가 하는 정보 이외에, 마리아가 품고 있는 태아에 관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53장 2-3절에 마리아를 대단히 걱정하게 만든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연한 순과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태중에 있는 아기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는 아기’일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있으니 걱정스럽기가 이를 데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노심초사하던 잉태의 날들을 모두 보낸 후, 이윽고 산달에 도달했습니다. 남편 요셉과 함께 남편의 고향 베들레헴을 향하여 (나귀를 타고) 가던 길에서, 이 걱정은 극치에 달했을 것입니다. (* ‘나귀를 탔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마리아가 만삭이었으므로, 그 당시의 교통수단으로, 나귀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이윽고 한 마굿간에서, 모진 산고 끝에 태어나신 아기를, 머리 꼭대기의 가마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고 나서야, ‘참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신 ‘천상의 임금님’인 자신의 아기를 가슴에 꼬옥 품고, 마리아는 극치의 안도와 평화를 맛보았을 것입니다.
<기도> 주 하느님,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도록 남다른 수고를 맡기신 그 옛날 마리아 할머니의 순종을 생각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외로운 마음의 고통도 잘 감내한 그녀를 본받아 저희도 저희에게 부여하신 고유한 사명을 수행하면서, 어떤 외롭고 힘든 일일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잘 감당하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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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지난 12월 18일자 ‘아침묵상’에서, 합창곡 ‘유랑의 무리’의 작곡자가 ‘샹상’이 아니라 ‘알베르트 슈만’이므로, 저의 착오임을 알려 드리며, 정중히 사과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