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물러가라, 내 영혼의 잠아!

<대림 4주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 개정판)

{ 구약 } 미가 5장 1-4a절 … [1] 그러나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헴아,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것 없으나, 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난다. 그의 핏줄을 더듬으면, 까마득한 옛날로 올라간다. [2]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시리라. 그런 다음 남은 겨레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3] 그가 백성의 목자로 나서리라. 야훼의 힘을 입고 그 하느님 야훼의 드높은 이름으로 목자 노릇을 하리니, 그의 힘이 땅 끝까지 미쳐 [4a]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리라.

{ 서신 } 히브리서 10장 5-6, 9b-10절 …. [5]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희생제물과 봉헌물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6] 당신은 번제물과 속죄의 제물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 ” [9b]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나중 것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것을 폐기하셨습니다. [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단 한 번 몸을 바치셨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 복음 } 루가 복음서 1장 41b-45절 …. [41b]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42]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43]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44]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45]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 = *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주님의 초림을 기억하면서, 다시 오실 재림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우리 각자의 신앙적 자세가 바로잡혔나를 점검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 ‘대림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의 자세가 얼마나 바로잡혔느냐’ 가 오늘 교회가 우리들 각자에게 묻는 다급한 질문입니다.

성탄일이 사흘 앞에 있습니다. 그날 우리는 다 함께 ‘기쁘다 구주 오셨네’ 를 찬미합니다. 과연 내 입에서 이 찬송이 진심으로 울려나기 위해서는 이제 사흘 남은 대림절의 마지막 기회에 진정 ‘내 영혼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마지막 몸부림’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을 입혀 세상에 보내신 것이 그분의 ‘관광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예하 관청을 ‘순시’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속죄의 제사 제물이 되라고 보내셨습니다. 오늘 서신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단 한 번 몸을 바치셨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히 10:10)

우리는 갓난 아기를 보면, 축하를 합니다. ‘참 복덩이군요.’ ‘아이구 예뻐라.’ ‘장군감입니다.’ ‘아가야, 복되게 오래 살거라.’ 이렇게 축복하는 말을 찾아 외칩니다.

우리들이 과연 아기 예수님 앞에서도 그런 축하인사를 할 수 있습니까? 너무나 송구스럽습니다. 입을 벌려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죽으러 태어나신’ 분 앞에서 무슨, ‘기쁘다 구주 오셨네’ 라구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라구요?

물론 아무 대책이 없던 인류를 위해서 단 한 번의 속죄제사로 구원하시러 오신 아기 예수님이 더 이상 기쁠 수 없을 만치 고귀한 선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희생제물로 오신 아기 예수님 앞에 ‘아기 주님,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인사를 드릴 말이 없습니다.’ 라고 엉거주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려고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었던 태아 세례 요한은, 마리아의 태중에 품기워 엘리사벳의 집 문을 두드렸던 태아 예수님 앞에서, ‘기뻐서 태중에서 뛰어놀았다’고 했습니다.(룩 1:44)

진정 죄를 미워하는 사람들만은, 죄의 권세를 물리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정 감사한 마음으로 맞을 수가 있을 터입니다.

전쟁이 그칠 줄 모르는 이 시대, 또 하나의 전쟁이 언제 돌발할지도 모르는 이 극동아시아 한 구석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의 왕, 화해의 왕으로 우리 속에 2천 년 전에 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영혼에, 우리들 공동체에, 우리 나라와 온 세계 속에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 만이 평화의 길인 줄 믿습니다.(미 5:3-4a)

마라나 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고전 16:22)

<기도> 주 하느님, 죄와 욕망과 사탄을 철저히 거절하며, 이 대림절 마지막 고비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반갑게 맞을 수 있도록 저희의 영혼이 깨어남과 씻김을 받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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