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 개정판)
{ 구약 } 예레미야 31장 15-16a절 …. [15] 나 야훼가 말한다. 라마에서 통곡 소리가 들린다. 애절한 울음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구나. 그 눈앞에 아이들이 없어 위로하는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가지 않는구나. [16] 이 야훼의 말을 들어라.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거두어라.
{ 복음 } 마태오 복음서 2장 13-18절 …. [13] 박사들이 물러간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알려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하고 일러주었다. [14] 요셉은 일어나 그 밤으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6]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대중하여 베들레헴과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버렸다. [17]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 [18] “라마에서 들려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 잃고 우는 라헬, 위로마저 마다는구나!”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 = *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이 바로되어 있으면, 어린이들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저 어린이들이 성장해서 사회인으로 일하고 살 때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소망이 있는 세상이 되겠지’ 하는 눈으로, 어른들이 새 세대의 어린이들을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세상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이기적이고, 자기 욕구를 채우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기성세대들이라면 어린이들을 약자로 취급해서, 그들의 소용에 닿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면, 어린이들을 함부로 취급해서, 그들을 죽이거나, 학대합니다.
성경에는, 어른들의 욕심에 의하여 어린이들이 학대 받는 역사가 몇 가지 소개되어 있습니다.
( 1 ) 주전 1530년 경,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집트 왕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가 증가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살이에서 벗어나고자 이집트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의 사내 아이를 출생하는 즉시 죽여버릴 것을 산파들에게 명령했습니다.(출 1:15-22)
이 잔혹한 인구정책의 틈바구니를 뚫고, ‘모세’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한 어린 생명을 기적적으로 자라나게 해서 동족을 구원하는 지도자로 성장시킨 역사를 하느님께서 이루어내셨습니다.
( 2 ) 주전 1450년 모세 시대로부터, 유다-이스라엘 남북왕조 시대를 거쳐, 에스겔 선지자가 활동하던 주전 590년에 이르기까지, 약 9백 년에 걸친 긴 세월 동안, 가나안 원주민들의 우상숭배를 배워, 야훼 하느님 만을 섬기던 아브라함의 후예들이, 몰록 우상에게 인신제사를 하는 습관을 따라 자기들의 자녀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일을 행했습니다.(레 18:21, 20:2-5, 신 12:31, 왕하 16:3, 21:6, 예 7:31, 에제 16:20-21)
이런 제사를 드리면, 자연재해를 면한다고 믿었고, 농업의 수확이 풍성하게 되고, 가족들의 안전이 보장되며, 그들의 사회가 번영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로 사용한 것이 자기 자녀였다니 그것이 제 정신으로 하는 짓들이었습니까?
( 3 )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외아들을 구세주로 세상에 보내셨던 ‘아기 예수’를 죽일 목적으로, 베들레헴 안팎의 2살배기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인 사건을 오늘의 본문에서 읽습니다. 그날 죽은 아이들의 처참한 살육이란 진정 인간역사에 다시 있어서는 안될 짓이었습니다.
헤로데 왕의 이 가혹한 살육의 목적은, 그렇게 모두 죽여 버리게 되면, ‘구세주로 오신 아기 예수도 죽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의지를 꺾어보려는 인간의 간악한 발동이 그런 엄청난 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 4 ) 이런 태아-영아의 살육은 지금껏 인간역사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대 외과의술이 발달하면서, 태아를 낙태시키는 수술이 만연하고 있음을 우리가 다 압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지 말아야, 우리가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며, 우리의 가정의 윤택한 살림을 유지할 수 있다며, 쾌락의 일탈을 감추려고, 세상 구경도 하기 전에 목숨을 끊어버리고 맙니다.
심지어 태어난 어린 생명을, 냉장고에 넣거나, 어미의 손으로 질식사시키거나 매장합니다.
이런 끔찍한 일을 그치지 않는다면, 언젠가 이 땅을 하느님께서 심판하실까 두렵습니다.
오늘날의 태아-영아-어린이의 생명 경시 풍조는 위의 파라오의 히브리 갓난 사내아이를 죽이던 일이나, 몰록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던 일이나, 헤로데 왕이 베들레헴 일대의 영아들을 죽인 일과 맥을 같이 합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에게 어린 생명을 잉태할 능력을 주시고, 낳아서 기르는 행복을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어린 생명들을 저희도 사랑으로 돌보게 하시며, 인류의 내일을 소망을 가지고 바라보고 계시는 하느님의 눈을 저희도 가지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