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구원 얻는 것이 참 복음

<성탄 1주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 개정판)

{ 구약 } 사무엘상 2장 18-20, 26절 …. [18] 어린 나이에 야훼를 모시게 된 사무엘은 몸에 모시 에봇을 입고 지냈다. [19] 그의 어머니는 매년 주년제를 드리러 남편과 함께 올라올 때마다 작은 두루마기 한 벌을 지어다가 아들에게 주었다. [20] 그러면 엘리는 엘카나 부부에겐 “야훼께서 맡기로 하신 이 아이 대신으로 이 부인 몸에서 후손이 나게 해주십시오.” 하고 복을 빌어주었고 이 축복을 받고 그들은 자기네 고장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 [26] 한편 어린 사무엘은 야훼와 사람들에게 귀염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 서신 } 골로사이 3장 12-16절 …. [12]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성도들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13] …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14]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 있기를 빕니다.

{ 복음 } 루가 복음서 2장 46-49, 52절 …. [46]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47]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48]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49]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 [52]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

* = * ( 1 )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우리들이 참고할 만한 읽을 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짐작하기로는, 하느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록 나이가 어릴 때일지라도, 그의 지혜와 능력이 남달랐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일정 연세까지는 그분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감추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가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경’(Apocrypha)과 ‘위경’에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각시키고자,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일화들을 몇 가지 실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가령, ‘야고보의 원복음서’, ‘도마가 쓴 예수의 유년기 복음서’, ‘아랍어 예수의 유년기 복음서’ 등등의 위경들이 있습니다마는, 거기 수록된 이야기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진흙으로 새를 만들어 공중에 날렸더니 푸드득 살아있는 새가 되어 동네아이들이 놀랐었던 일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정경 편집과정에서 이런 책들을 정경에 채택하지 않고 경전 외의 이야기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신빙성이 약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물론 창조주 하느님의 아들이 그런 정도의 기적을 왜 베풀 수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이, 예수님의 신성을 그가 행한 이적과 기사들로 입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듯이,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그의 지혜와 능력이 여느 사람들보다 훨씬 능가하였다고 구태여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 2 ) 우리들의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초월적 능력의 기적들을 베푸신 분이라는 점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식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분의 진실되심과 사랑이심에서 그분을 하느님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그의 십자가 사건에서 우리가 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다”(마 10:38)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학은 십자가 복음에서 시작하여, 부활의 십자가로 완성합니다. (고린도전서 1:17-18, 23, 2:2) 바울도 그랬고, 어거스틴도 그랬고, 칼 바르트도 그랬습니다. 다른 철학으로, 다른 문학으로 기독교 신앙을 풀어보려던 사람들은 모두 실패하고 후회했습니다.

( 3 )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려고 오셨습니다. 열두 살 때에,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하셨던 것도, 왜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셔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한가한 신학토론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2박 3일 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어도, 율법학자들은 ‘십자가 복음’의 이치를 깨달을 수가 없었고,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의 여러 말씀들을 인용하시면서 이를 입증하시느라 수고하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서두에 신학자 니고데모를 만난 자리에서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메시아)도 들려야 할 것이다”(요 3:14) 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십자가로 세상이 구원 얻게 됨을 말합니다.

<기도> 주 하느님,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러 세상에 오셔서, 왜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는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을 통하여 저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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