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샘솟는 하나님의 나라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이상신 생생성경)

{ 복음 } 마가복음 6장 34-45절 …. [34] (예수)께서 와서 보니 벌써 큰 인파를 이루었고 목자 없는 양같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5]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제자들이 그분께 나와 말하였다 “이곳이 인적이 드문 곳이고 날도 저물어가니 [36] 사람들을 흩어지게 해서 주위 농가나 마을에 들어가 뭐라도 사 먹게 합시다” [37] 그분은 응답으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들이 말하였다 “그럼 저희가 가서 200 데나리온 어치 빵을 사다가 나눠줄까요?” [38]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빵이 얼마나 있는지 가서 보고 오너라” 저들이 알아보고는 말하였다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입니다” [39] 푸른 풀밭 위에 잔치 손님 받듯이 모든 사람들을 무리지어 앉히라고 제자들에게 지시하셨다 [40] 100명씩, 50명씩 구획을 지어 무리를 앉게 하였다 [41] 그리고 그분은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취하여 하늘을 향해 우러러보시며 축복하시고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사람들 앞에 식탁 차리듯이 놓게 하셨다 또 물고기 2마리 역시 모든 사람에게 잘라서 나눠 주셨다 [42] 모두들 배불리 먹었다 [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을 12 바구니에 가득차게 거두었고 물고기는 따로 (거두었다) [44] 이 빵을 먹은 사람은 남자만 5,000명이나 되었다 [45] 그분은 제자들을 재촉해서 얼른 배를 타고 먼저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다 그동안 그분은 사람들과 작별하며 헤어졌다

* = * 남자만 오천 명이 된다면 여자들과 아이들을 합해서 1만 명이 훨씬 넘는 군중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갈릴리 여러 마을에서 일시에 모여 들었다고 하면(33절 참조), 굉장한 무리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자 온 사람들도 있었고, 그분에게서 병고침을 받으려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온 사람들도 있었고,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도 있었고, 단순히 구경거리 났다고 모여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니, 대단히 통제가 어려운 군중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이 계셔서, 사랑의 교류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먼저 걱정을 시작했습니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으니, 얼른 무리를 흩어지게 해서, 인근 마을로 들어가 요기라도 하고 귀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건의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이 먹이려무나.” “저희가요? 이 사람들이 다 먹으려면 적어도 200데나리온(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3,000만원) 어치 빵은 사 와야 할 텐데요?!” 이렇게 많은 빵을 불시에 찾아가서 살 수 있는 곳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빵이 얼마나 있느냐?” 비상식량을 찾아보라는 말씀인 것도 같지만, 하여간 제자들이 확인한 결과를 보고드렸습니다. “네. 빵이 다섯개, 구운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평행구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는 ‘여기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요 6:8-9)

이 아이가 누군지, 몇 살이나 되었는지, 왜 자기가 싸온 음식을 먹지 않고 주님의 제자에게 맡겼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소년의 마음 깊은 곳에 담겨 있었던 예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소년의 예수님 사랑과, 예수님의 권능이 함께 역사한 곳에서, 1만 명이 넘는 대군중이 배를 불리는 만찬이 이루어졌습니다.

‘시장이 반찬’ 이란 말이 우리들에게 있으니, 그들이 얼마나 맛있게 저녁을 먹었는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 다음 날 가파르나움으로 따라온 군중들에게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 6:26) 하신 것을 보면, 그 전날 벌판에서 음식 두 가지만 놓고서도, 그 어느 정찬에서보다 맛있게 먹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곳에서는 어디서든 사랑의 사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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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요한 일서 4장 7-10절 …. [7] 사랑하는 자들이여,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서 하나님을 알아봅니다 [8]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나님은 그분의 독생하신 아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분 아들을 우리 죄를 대신하는 속죄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 = * 빵을 나누어먹는 정도의 친교는 어느 곳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식객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더구나, 우리 죄 많은 인류를 위해 외아들을 보내 주셔서 구원하시고, 영원토록 하나님 나라에 살게 하신 일이야 말로,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 사랑입니까? 우리가 그 크신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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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 >> 루시안 ( Lucian of Antioch, 240 – 312?) : 루시안은 시리아의 안티옥 출신의 사제로서, 안티옥 학파를 대표하는 학자였으며, 구약성경(70인역)과 사복음서 희랍어 번역본의 원문을 연구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디오클레시안 황제의 박해 시에, 9년 동안 니코메디아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모진 심문을 받으며 그리스도를 부인할 것을 요구 당했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아사했거나, 또는 칼에 맞아 별세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의 인물됨과 지도력을 사랑한 나머지 판사가 형을 면할 길을 찾아주려고 그에게 배교를 권했지만, 루시안은 최후까지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라는 말만 되뇌일 뿐이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정도로 인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크고 높으신 사랑 때문에, 믿음의 선배들도 목숨을 바쳐 주님을 사랑했음을 보며 기뻐합니다. 저희도 전생애를 바쳐 주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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