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르코 복음서 1장 14-20절 ….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15] “때가 차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 [16]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시다,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소.”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나섰다. [19] 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와 삯꾼들을 함께 배에 남겨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 = *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일이 그렇게 간단히 말씀 한 마디에 부모와 집과 생업을 떠날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삼 년여 동안 제자로 따라다니다가도 ‘주님께서 이번에 왕위에 등극하시면, 저희 형제들을 오른 편과 왼 편에 앉게 해 주세요’(마 20:20이하) 라고 엉뚱한 제안을 했던 야고보와 요한 형제라든지, 대제사장의 집뜰에서 그 밤에 모닥불을 쪼이고 앉았다가 한 여종이 ‘이 사람은 나자렛 예수의 부하가 틀림없어요’ 라는 말에 자기 말이 거짓말이라면 천벌이라도 받겠다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마 26:74) 라고 딱잡아뗄 만큼 의리부동한 베드로 같은 이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일 만큼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의 길은, 열 두 번도 넘어지는 과정을 겪고서야 되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힘든 일을, 예수님께서 수난, 부활, 승천 하시고, 오순절 날 그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얼마나 당당한 사도들이 되었던가를 생각해 보면, ‘두고 보면 알 일’ 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낙심하지 맙시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니까요.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믿음의 사람들> ( 1 ) 힐라리 (Hilary, 315 ? – 367 ) : 프랑스 중서부 지방 포아티에 출신으로, 온 가정이 이교도였으나, 힐라리는 남달리 뛰어나게 공부를 시켜서 희랍어와 라틴어에 출중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30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후 5년이 지나 그는 주교에 피선되었고, 당시에 막강한 교권을 휘두르던 아리안주의자들(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던 자들)과 맞서는 교리논쟁에서 주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토대로, 예수님의 신성을 입증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여, ‘서로마교회의 아타나시우스(예수님의 신성을 역설한 신학자)’라는 칭호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리우스파를 지지하던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가 즉위하자 355년에 성직에서 밀려나 프리기아로 추방된 일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실직생활 기간 중에도 ‘삼위일체론’을 비롯한 호교론적 저술과 마태복음 주석, 시편 주석 등 역사에 남는 주석서들을 저술했습니다. 강인한 신학논쟁가로 살았으면서도, 다정다감하여 암브로시안 성가에 못지않은 운율성가들을 작사 작곡하여 후세에 전하기도 했습니다.
( 2 ) 켄티건 (Kentigern, 별명 Mungo, ? – 603 ) : 켄티건의 별명 ‘뭉고’는 그의 고향인 스콧틀랜드 말로 ‘친애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영국의 왕족 집안 출신으로, 남부스콧틀랜드 지방의 수도원에서 공부를 한 후, 선교사가 되어 스트라트클라이드 지방에서 일생 브리튼족(Britons)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기독교 박해가 심해져서, 한때 웨일스 지방으로 피신한 일도 있었지만, 가까스로 고향 스콧틀랜드로 복귀하여, 전도자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주후 603년에 그가 숨을 거두고, 그의 무덤이 글라스고 시에 있는 ‘성 뭉고 대성당’ 경내에 있습니다.
( 3 ) 죠지 폭스 ( George Fox, 1624 – 1691 ) : 퀘이커(Quakers) 친우회의 창설자인 폭스는 레스터셔(Leicestershire)의 페니드라이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직공이었지만, 폭스는 구두제작공이었습니다.
그가 열 살 무렵서부터 3년 여 동안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여러 지방을 전전하면서, 남달리 신령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을 그가 표현하기를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내면에 비쳐드는 빛”이라고 했습니다.
22세 때부터 그는 그의 심령에 들려 주시는 내면의 말씀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말씀을 들으러 모이는 사람들의 모임을 ‘친우회’라고 부르고, 장로교와 같은 ‘제도적 교회’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도적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고 늘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모임에서 특별히 강조했던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이었는데, ‘친우회’ 모임을 구경하러 갔던 사람들이 보았던 것은, 그들이 영적 체험을 할 때에는 몸을 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떠는 사람들’(Quakers)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는데, 이 이름을 그들 자신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떠는 사람들’이라는 호칭을 교단 이름으로까지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폭스는 영국과 유럽대륙, 그리고 북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 등지에 광범위하게 여행하면서 교세를 확장하여 그의 생애 동안 큰 교단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691년 오늘 별세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인간은 비록 나약하지만, 저희 나약함을 도우시어, 저희를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일을 이루시는 것을 믿습니다. 저희에게 순종의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