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수도자의 100년 생애

<안토니오 기념일,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르코 복음서 10장 17-22절 …. [17]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물었다. “인자하신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18]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인자하다고 합니까? 하나님 한 분 말고는 아무도 인자하지 않습니다. [19] 그대는 계명을 알고 있지 않소?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 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등이지요.” [20] 그가 예수께 대답했다. “선생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모두 지켜 왔습니다.” [21] 예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그대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소. 돌아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시오. 그러면 그대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시오.”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오늘은 세계교회가 수사장 안토니오(Anthony, 251 – 356) 를 기념합니다. 그는 이집트의 멤피스 지방에서 태어나 콜심(Colzim) 산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수도자를 지망하는 청년들과 더불어 수도원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러는 동안 한 성경말씀이 그의 마음에 박혀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그대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소. 돌아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시오.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시오.”

그의 나이가 20세 가량 되었을 무렵, 부자였던 부모님을 일찍 여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씀대로, 가진 것을 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혼자 만의 방랑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수도원들이 완벽한 제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여서, 안토니오는 고향(멤피스) 근방의 여러 지방을 전전하면서, 기도생활, 성경연구,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 등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의 나이가 60이 되기까지 주로 이집트의 여러 지방의 광야를 떠돌면서 은둔생활 형태로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 – 373)는 ‘안토니오의 생애’라는 책자에 그의 생활을 단편적이나마 기록해서 남겼습니다.

특별히 그를 수도생활에서 낙오하게 하려는 악마의 유혹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1) 그가 한때 지니고 있었던 많은 재산들에 대한 미련을 다시 환원하고 싶은 꿈을 꾸게 하는 것, 2) 독신 생활에서 오는 고독을 면하고서도, 수도자 다운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꿈 꾸게 하는 것, 3) 자신의 은둔생활이 남다른 영적 권위를 지닌다는 우월감에 도취하는 것, 4) 광야의 생활 가운데 가끔 괴물이 나타나는 환각과 환영을 보거나, 또는 질병으로 인한 심리적 공포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금식으로 이런 유혹과 시련들을 과감히 떨치고, 안토니오는 그의 나이 61세가 되던 312년, 콜심 산(Colzim, 카이로 남동쪽 330키로 사막지대)으로 들어가서, 굴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후 그가 죽을 때까지 이곳을 자기의 집으로 삼았습니다.

점차 그의 소문이 널리 나게 되면서, 안토니오를 만나러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신앙적 충고를 듣고자 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호기심에서 그의 생활을 보다가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그의 주변에 기거하면서 수도자 생활을 하려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년에 ‘아리우스파’(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신학자들의 활동)에 반대하여 알렉산드리아에서 신학연구를 하고 있던 아타나시우스와 힘을 합하기 위해 수차례 그를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타나시우스의 기록을 통해서 안토니오의 생애가 후대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안토니오와 유사한 수도자들이 있어서, 열광주의적 전설을 남긴 이들이 많이 있었지만, 안토니오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고, 온건한 편에 속하는 영적인 지혜를 갖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그의 금욕생활을 항상 하나님을 잘 섬기는 방도로 소개했습니다. 그의 생시와 사후에도 교회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으며, 그에 대한 존경심이 중세기를 통하여 모든 기독교국가들 속에서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그의 청빈생활 만으로도 그를 존경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후대에 모든 수도원들이 그의 본을 따랐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삶이 너무 부유한 것을 부끄럽게 느끼도록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전문수도자가 아니어도, 지닌 것을 많이 나누며 살게 하시고, 또한 ‘소비가 미덕’이 아니라, ‘소비가 자연파괴인 것’을 통감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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