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론의 자유에서 시작한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르코 복음서 3장 21-30절 …. [21] 그런데 예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예수)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께서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2]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말했다. “그(*예수)에게 베엘제불이 들렸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23]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겠소?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지 못합니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지 못합니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지 못하고 끝장이 납니다. [27] 먼저 힘센 무리를 묶어놓지 않으면 아무도 그 힘센 무리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습니다. 묶어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습니다. [28]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노니,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떤 말도 용서받을 것이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무리는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됩니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에게 악령이 들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 = * 예수님의 권위가 말할 수 없게 높이 치솟았습니다. 단순한 인기의 차원이 아니었고, 경외와 경탄의 차원이었습니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인근의 이방나라 사람들까지, 병든 가족 이웃들을 데리고 예수님에게로 몰려들면서 하는 말이, ‘예수님은 신적 권위를 지닌 분’ 이라고 했고,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메시아(구세주)임이 틀림없다’ 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당시의 기득권자들은 바싹 경계를 했습니다. 분봉왕 헤롯과 로마제국의 총독, 그리고 유대인의 실권자 대제사장 가야바와 안나스가 모두 긴장했습니다. 그들이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유대 땅의 모든 이권을 자기들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또 하나의 떠오르는 새로운 인물, 그것도 민족의 영웅으로 추대되는, 일명 ‘메시아 예수’라고 불리우는 지도자가 깃발을 든다면 쉽게 제거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로 지금 전국을 떠돌며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이념을 말하고 다닌다 하니, 일단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력자가 다른 적대적 존재를 공격하는 방법은 첫째로 명예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자기가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고, 수하의 사람들을 사용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율법학자와 또 다른 사람들”이라 했습니다. 이름을 말해 줘도 누군지 알지 못할 사람들을 이 명예훼손의 도구로 먼저 사용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방송이나 신문 같은 대중언론매체가 없었기 때문에, 소위 ‘카드라 통신’을 사용했습니다. “나자렛 예수라는 사람, 그 사람 성한 사람이 아니라 카드라.” “누가 그러던데, 그 사람 베엘제불 귀신이 들렸다 카드라.” “그의 고향 나자렛에서는 그 자를 아예 ‘미친놈’이라 칸다드라.” ‘누가 그러대?’ “사람들이 그런다 카드라.” 이것이 ‘카드라 통신’입니다.

오늘날도 대중매체보다 더 활개치는 것이 유튜브 통신이고, 그것보다 더 영향력 있는 것이 ‘카드라 통신’입니다. 이 카드라 통신이 사람을 잡습니다. 수많은 촉망있는 사람들이 이 카드라 통신에 의해 좌절 당하고,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런 공격을 당하셨습니다. 여간 아프게 친 것이 아닙니다. “베엘제불(*더러운 귀신의 최고봉) 의 부하라 카드라.” “마귀의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 카드라.” 한 두 사람이 헐뜯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정공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을 일-대-일로 대면해서, ‘내가 사탄의 두목의 힘을 빌려 사탄의 나라를 공격한다고 하면, 그 나라가 몇 날이나 가겠는가, 이 사람들아? 사탄이 그렇게 무지-무능한 줄 아는가? 꾀가 발발한 놈들이라네..’

그후 그 명예훼손의 행각이 멈추어졌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에 서게 될 때까지 그들의 허위고발, 허위선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대중매체라고 하는 방송과 신문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알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법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언론기관들은 누군가에 의해 통제 당하고 있고, ‘자유 언론’이 실재하는지는 참으로 의문스럽습니다.

언론의 자유 없이, 자유가 없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없이는 조작된 보도, 편파적 보도, 의도적 보도에 국민이 놀아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 마저 모두 차압되고 맙니다.

< 기도> 주 하나님, 사탄의 속임수가 광란을 벌이고 싶은대로 벌이고 있는 이 세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희의 영혼을 깨우시고, 영적 분별력을 주시옵소서. 세상을 똑바로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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