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신앙과 성령의 신앙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 서신 } 갈라디아서 3장 1-6절 … [1]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습이 여러분의 눈앞에 선한데, 누가 여러분을 홀렸습니까? [2]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을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행하는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믿음의 소식을 들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와서는육체로 끝마치려고 합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은, 다 허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참말로 허사였습니까? [5]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율법을 행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믿음의 소식을 듣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6]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운 일로 여겨 주셨다” 는 것과 같습니다.

* = *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에 보면, 한 가정사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두 아들을 둔 어떤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 마음을 꽤나 괴롭혔습니다. 집안일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고, 집안에서 안 보인다 싶으면, 벌써 밖에 나가 나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말썽쟁이, 사고뭉치’ 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서로 수군거리기를 ‘그 집 작은 아들은 못 쓰겠더군. 아예, 동네에서 쫓아내는 게 좋을 것 같아.’ 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가 상속할 유산을 미리 달라기에, 아버지는 마지못해 줬는데, 그후 먼 데로 떠나서 허랑방탕하게 모두 탕진하고, 알거지가 되어 돌아온 이야기는 모두 생략하겠습니다.

집 나갔던 작은 아들이 돌아온 후, 큰 아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평소 아버지의 규칙을 잘 지키며 집안일을 쑤걱쑤걱 잘 하던 그가, 이젠 하루 종일 화가 난 얼굴로, 가족들과 대화를 끊었습니다.

동생이 돌아오고 나서, 만면에 미소를 띠우고 즐거워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보기가 싫어서 그런 심술이 난 모양입니다.

큰 아들은 동생을 똑바로 보지 않고, 곁으로 지나가도 아는 척을 안 했습니다. 물론 말도 붙이지 않았지요.

아버지의 심정은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하루는 큰 아들을 불러 말을 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그렇게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집안이 온통 냉랭해져서 안 되겠다. 좀 기분을 풀어라. 동생과도 좀 구순하게 지내려무나.’

그런데 큰 아들이 아버지의 달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일언반구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평소대로 규칙은 여전히 지키고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작은 아들대로, 자기의 과오로 형이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좌불안석이었습니다. 다시 집을 나갈 수도 없고, 형에게 용서를 빌어봐도, 별 반응이 없을 것 같고, 참으로 한 나절 지내기가 마치 바늘 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이제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 여러분,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큰 아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아버지(하나님)께 효도(믿음)하는 자세이겠습니까? 또 작은 아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믿음)의 자세라고 생각하십니까?

동생의 경우, 성공을 하든 못하든, 애써 형에게 용서를 구하고, 또 구해서, 기어이 형의 마음을 돌려놓기를 힘쓰는 것이 작은 아들의 효도(믿음)의 자세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큰 아들이, 결국 동생에게 ‘미안하다. 네가 잘못을 뉘우치고, 집으로 돌아와 준 것 만 해도 고맙다. 네가 돌아온 후, 내가 심술을 부려 너를 불편하게 했던 것을 용서해라. 아버지(하나님)도 나 때문에 마음 쓰게 해 드려서 죄송하기 그지없다. 내가 곧 용서를 빌어야겠구나.’ 이것이 큰 아들의 효도(믿음)의 자세일 것입니다.

이 두 아들의 차이를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을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큰 아들’은 율법주의자, 곧 규칙(율법)을 지키면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드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그 하나요, ‘작은 아들’, 곧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항상 살펴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기를 힘쓰는 사람들, 곧 믿음을 중요시하는 사람들로 나눌 수가 있다고 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때로는 율법주의자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썩여 드립니다. 용서하옵소서. 또 때로는 믿음을 저버리고 하나님 아버지 집을 떠나 허랑방탕하는 일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주 하나님, 간절히 빕니다. 저희의 마음이 늘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알아,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