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절규의 유형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이상신 생생성경)

{ 복음 } 마가복음 5장 22-23, 25-27, 29-30, 33-36, 40-42절 …. [22] 수나고게(*회당) 지도자 중 한 명인 야이로가 찾아와 그분을 보고 발 아래 엎드렸다 [23] 그리고 그분께 대단히 간절하게 청하며 말하였다 “나의 어린 딸이 죽음의 문턱에 있습니다 부디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고침을 받아 살아날 것입니다” … [25] 12년간 피가 멈추지 않는 [병을] 가진 한 부인이 있었다 [26] 많은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고통만 겪고 가진 모든 것을 다 써보았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이 도리어 악화되기만 하였다 [27] 그런데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인파 속에 섞여 뒤에서 그분 옷에 손을 갖다 대었다 … [29] 그러자 피의 근원이 건조해졌다 그녀는 자기 몸이 질병에서 치유된 것을 알아차렸다 [30] 예수께서도 곧바로 자신 안의 능력이 밖으로 나간 것을 아셨다 돌아서서 무리 가운데 말씀하셨다 “누가 내 옷에 손을 갖다 대었소?” … [33] 부인은 자기에게 생긴 일을 알고서 두려워 떨었다. 그리고 그 앞에 달려가 엎드리며 자기의 모든 일을 사실대로 쏟아놓았다 [34] [예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딸이여 당신 믿음이 당신을 구원한 것입니다 샬롬을 향해 사십시오 질병은 떠나가고 건강이 있을지어다” [35] 아직도 그분이 말씀 중이었는데 수나고게 지도자의 측근들이 와서 말하였다. “당신 딸이 죽었소 선생님을 더 이상 번거롭게 하지 맙시다” [36] 그러나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수나고게 지도자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 마십시오 다만 믿음만 가지십시오” … [40] 사람들은 비웃었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만 데리고 아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그 아이의 손을 힘있게 잡고 말씀하셨다 “탈리다 쿰” 번역하면 ‘소녀야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라는 말이다 [42] 그러자 곧바로 여자 아이가 일어나 걸어다녔다 [그 아이는] 열두 살이었다. …

* = * 병이 들어도, 믿음으로 고쳐야 한다며, 병원에 안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병이 나면 기도하면서 병원으로 빨리 가야 합니다. 의원들의 지식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후자의 의견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회당장인 야이로라는 사람과 혈루병을 앓는 한 여인이 나옵니다. 회당장은 그의 딸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여인 역시 말기환자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회당장 야이로의 태도를 보십시오. 예수님께 와서, 마치 의사처럼 처방을 내리고 있는 듯합니다. “저의 집에 오셔서, 손을 얹어 주시면, 제 딸의 병이 물러갈 것입니다.”

혈루병 여인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군중들에 에워싸여 회당장의 집으로 가던 도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군중 속에서 예수님께 다가가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습니다. 그분의 옷깃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지만, 병이 나은 것은 그녀의 믿음 때문이었기보다는,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능력을 베푸신 것이지요.

기도해서 병이 나은 사람도 있지만, 기도했는데도 병이 낫지 않는 성도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온전치 않아서 그랬을 경우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크신 계획이 있어서 우리를 질병의 상황에 두시는 것이겠지요.

의사들도 병으로 죽습니다. 병을 고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못 고치는 병이 많아서 그렇겠지요.

사도 바울은 질병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을 많이 고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몸에 지닌, 이름을 알 수 없는,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 하나’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고쳐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교만해질까봐 하나님께서 장치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이윽고 깨달았습니다(고후 12:7).

성도들도 역시 위급한 상황을 만납니다. 스테반은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사서 돌팔매질 속에 숨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여, 이 위난에서 하나님의 사람인 저를 건져 주시옵소서.’ 라고 하지 않고,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행 7:59)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받아 주시는 일만큼 고맙고 크신 은혜는 없지 않습니까? 그 은혜의 결과는 영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스테반 못지않게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날 주님 곁에서 함께 처형당하던 강도였습니다. 그는 그날 빌라도 법정에서 처음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예수님을 뵈면서, 이분이야말로 ‘하늘나라의 임금’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놀라우신 분이 왜 인간에게 고분고분 처형을 당하는 것일까가 대단히 궁금했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크고 웅대한 목적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자기 자신도 경황이 없는 때에, 예수님께 간절히 빌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가자고, 능력을 베풀어 보시라고 졸랐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의 말 내면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믿었던 그의 신앙도 엿보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질병도 인간의 삶의 한 과정임을 고백합니다. 이 고통스런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 긍휼하심, 경륜이 크심을 깨닫습니다. 주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야 하듯이, 저희의 병도 나음을 받든 못 받든 주님의 손에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무슨 질병이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순례의 노정’임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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