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뉴턴과 윌버포스의 이야기 (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만도 1과 } 갈라디아 5장 25절 – 6장 5절 …. [25]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26] 우리는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싸움을 걸지 말고 서로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 [6:1]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의 지도를 따라 사는 사람이니,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2] 서로 남의 짐을 져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 [3] 사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무엇이나 된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4] 각각 자기가 한 일을 살펴봅시다.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혼자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이지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못 됩니다. [5] 각 사람은 자기 짐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 = * 존 뉴턴 사제의 간곡한 권고를 들은 후에, 윌버포스는 국회의원을 사직하려던 생각을 완전히 포기하고, 영향력이 있는 정치가가 되어,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일을 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흑인노예들이 당하고 있는 삶의 실상과 잔혹한 노예무역의 실상을 알리는 일은 존 뉴턴이 담당하기로 했고, 노예제도의 철폐를 정신적으로 계몽-홍보 하는 일을, 당시 교육자이며 작가로서 널리 알려진 Hannah More(1745 -1833) 여사가 맡기로 했습니다.

한편 Clapham Sect 라는 복음주의에 입각한 사회개혁운동체를 결성했는데, 그 일의 주무를 G. Sharp가 맡아서, 노예폐지운동 방면에서 일했고, 널리 개체교회들을 복음주의 사회운동에 참여케 하는 일을 John Venn(성공회 사제)이 맡았습니다.

뉴턴은 20대와 30대 시절에, 자신이 그토록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일반에게 알리는 것은, 교회 목회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이즈음까지 발설하지 않고 있었지만, 노예제도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하여, 자신이 노예무역 업자였다는 사실을 실토하기로 결심하고, 1788년에 ‘노예무역의 시’ 라는 이상스런 제목의 고백서를 발표했습니다.

그가 이미 1779년에 쓴 찬송시 ‘Amazing Grace’는 세계교회가 가장 애송하는 찬송일 것입니다. 아마도 지난 250년 동안 세계인류를 죄의 길에서 돌아서게 만든, 가장 영향력 있는 찬송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이 찬송시가 지어진 내력을, 그제서야 사람들이 알게 되어, 큰 감동으로 뉴턴의 고백록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롬 5:20) 라고 한 말씀에도 적합한 예입니다.

영국은 전통을 좋아한다고 했던가요? ‘없던 것 새로 만들기도 힘들고, 있던 것 없애기 힘든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편리한 관행인 노예제도를 없애겠다는 취지가, 쉽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의원들의 집집마다 수 명의 흑인남녀 노예를 보유하고 있던 입장에서, 아무리 성경적 도의와 맞지 않는 관습이라 해도, 이를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윌버포스가 1786년에 ‘노예제도 폐지를 위하여 나의 명을 걸었다’고 소신을 피력한 이후, 21년이 지나서야 ‘노예무역 폐지법’이 영국 국회에서 채택되었으며, 다시 12년이 더 지난 1833년이 되어서야 ‘노예제도 폐지’ 안이 결의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오랜 노력의 세월을 한 마음으로 뭉쳐 기도하며 일했던 뉴턴과 윌버포스, 그리고 해너 모어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이었습니다. 뉴턴은 1807년,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결의가 이루어지던 해에, 윌버포스와 해너 모어는 1833년, 노예제도를 폐지할 것을 결의했던 해에 각각 별세했습니다.

영국에서 이루어진 이 노예제도 폐지의 법제화 역사는, 그후 30여 년 동안(1833-1865), 미국에서도 흑인노예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북부 미국이 노예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강한 주장에 맞서서, 이를 반대하던 남부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대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은 4년(1861-1865)에 걸친 비극적인 ‘남북전쟁’을 치른 후에야, 흑인노예를 해방할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 주역이 되었던 링컨 대통령(1809 – 1865, 대통령 재임 1861-1865) 역시 복음의 감화 속에 평생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성령께 붙잡힌 사람들을 통하여 복음의 감화 속에 세상 역사를 이끌어 주심에 경배와 찬양을 올립니다. 간절히 빕니다. 저희 모든 성도들의 생각과 삶을 날마다 이끌어 주셔서,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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