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 만도 1과 } 디모데후서 1장 1-14절 …. [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이,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를 할 때에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조상들을 본받아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4] 나는 그대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대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를 만나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5] 나는 그대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깃들여 있었는데, 그것이 그대 속에도 깃들여 있음을 나는 확신합니다. [6] 이런 이유로 나는 그대를 일깨워서, 그대가, 나의 안수로 말미암아, 그대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이게 하려고 합니다. [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일이나 주님을 위하여 갇힌 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으십시오. [9]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실을 따라 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는 영원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심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보이셨습니다. [11] 나는 이 복음을 전하는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2] 그러므로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어온 분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이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13]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고, [14]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맡은 바 선한 것을 지키십시오.
* = * 성경에 실려 있는, 사도 바울의 열세 개 서신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디모데후서의 서문 부분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 편지를 쓰던 바울의 나이가 정확하지는 않으나, 대략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에 걸친 때였다고 보입니다.
현재 한국인들의 70세 전후의 나이면, 늙은이라고 보아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후 1세기의 70세를 전후하는 나이면, 상당한 고령에 속할 것입니다.
이런 늙은 분의 글을 읽고 있는데도, 이것이 고령의 사람의 글이냐 할 정도로 패기와, 사명감과, 열정과, 믿음이 충만한 한 젊은이의 글을 읽는 느낌이 듭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전체 연령대에 걸쳐 계십니다. 어느 분이든 간에, 오늘 사도 바울의 ‘젊은 기운’을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들이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속에 나타난, 바울 사도의 젊음의 내력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1 ) 여러분은 디모데후서를 쓰던 바울의 상황을 아시지요?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상태였습니다. 가택연금 상태가 아니라, 중죄인으로 선고를 받고, 아마도 형이 집행될 날짜만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딤후 4:6-8 참고)
그런 바울의 처참한 입장에서, 구슬픈 탄식조의 편지가 아니라, 믿음의 동지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과 같이 여기던’ 젊은 디모데에게 사랑의 정을 듬뿍 담아서 쓰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무슨 희망이 있겠으며, 무슨 기운이 있어서 편지를 쓰겠습니까? 디모데에게 빌어준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와 평화”(본문 2절)가 실상 바울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2 ) 디모데를 위하여 그의 믿음의 계보를 기억하며 살라고 권고합니다. 귀한 믿음의 유산이 디모데의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기억하면서 그것을 놓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본문 3-6절)
이 글을 읽으면서, 저도 제 할머니 정대옥 여사와 제 부모 이재면 목사 – 김만실 사모의 믿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진정 믿음의 유산만큼 귀중한 유산은 없습니다.
디모데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된 것은 정작 사도 바울에게서였는데, 바울은 ‘내가 전해준 복음을 잊지 말라’ 라는 말 대신, 수신인인 디모데의 믿음의 가정 족보를 추켜 세웁니다. 대단한 겸손입니다.
3 )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서 위로를 받아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믿음생활에 위축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전하라며, 담대해질 것을 권고합니다.(본문 7-8절)
8절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나와 함께 고난에 참여하시오.” 이 얼마나 씩씩한 작전지휘관 다운 영적 독전의 말씀입니까? “나와 함께” 라는 어구가 저에게 감동을 줍니다. 지휘관들은 창칼이나 화살이 와서 닿지 않는 곳에서, 부하들에게 호령만 하고 있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내가 이처럼 열전을 하고 있으니 너도 … ”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훌륭한 사도입니다.
4 ) ‘확신의 신앙을 지니고’(본문 12절),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본문 13절), 또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본문 14절) 맡은 바 사명을 손색없이 감당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습니다.”(딤후 4:6) 이것은 늙을만큼 늙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형 집행이 가까웠던 상황을 말합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딤후 4:7) 이것 역시 바울이 자신의 업적을 자화자찬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의 모든 복음전도 사역이 이제 머지않아 끝날 것 같다는, 곧 죽게 되리라는 뜻에서 하는 말씀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씀이,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지점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얼마나 패기만만합니까? 하늘나라의 개선행진까지 내다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영원한 청년’ 바울을 오늘 추모합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인 저희가 사도 바울처럼, 지금 나이가 얼마든, 건강의 조건이 어떻든, 청년다운 기상을 잃지 말 것을 교훈받으며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 안에서 날마다 이 기상으로 저희의 인생 골인지점을 향해 달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