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구약 } 창세기 3장 1-8절 …. [1] 주님이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짐승 가운데 제일 간교한 것이 뱀이었다. 그 뱀이 여인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하나도 따 먹지 말라’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 [2] 여인이 뱀에게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되, [3] 이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그리 하면 네가 죽으리라.’ 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인을 꾀었다. “너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5] 그 나무 열매를 따 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선량함과 사악함을 알게 될 줄을 하나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인이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스럽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만 아니라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 그 열매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었다. 남편도 먹었다. [7]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렸다. [8] 날이 저물어 선들바람이 불자 주님이신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주님이신 하나님 눈에 뜨이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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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량함과 사악함을 인간이 알면 안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 (5절에서 제기할 수 있는 질문)
** [(대답)] 인간이 선과 악을 아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지요. 다만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아담(인간)이 의문점이 있으면, 하나님께 여쭈면 될 일을, 자기 자신이 판단해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좀 확대해서 보자면, 아담(인간)이 하나님을 도외시된 상황을 꿈꾸었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세를 포기하고,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면서 살고 싶은 의지를 ‘행동으로, 공공연히’ 나타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창 3:7)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창 3:8-10) 자기 책임이라고 자성하지 않고, 남의 탓을 했습니다.(창 3:12-13) 그리하여 죽음과 저주를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창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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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열매를 먹는 것이 그토록 문제가 복잡한 것이라면, 왜 애당초 그런 나무를 인간의 손이 닿는 곳에 심었는가? 또 그 열매를 봄직하고 먹음직하게 만들었을까요? >> (3, 6절에서 제기할 수 있는 질문)
** [(대답)] 에덴 동산의 모든 과일들이 아름다웠고, 먹음직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과일이든지 눈에 뜨이도록 동산 가운데에 널려 있었을 것입니다.
선악과나무를 ‘에덴의 한가운데에’ 심은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였고, 먹지 말라면 먹지 않았으면 상호신뢰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책임이 없는 자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규제 때문에 할 일을 못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자주적으로’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인간)이 선악과를 먹기 이전까지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악과에 관한 욕심을 품기 시작한 때부터였습니다. 인간이 어떤 것(또는, 남자나 여자)에 욕심을 품기 시작하면, 그것이 새삼 아름답게 보이고, 자주 보게 되고, 눈여겨 보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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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화의 요인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 아닙니까? 아무리 인간이 믿을 만한지를 알아보려 했다 해도, 그렇게 오랜 세월(수 천 년) 동안 등지고 살게 될만큼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한 시험을, 짐짓 치르게 하실 필요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 (3장 전체에서 제기할 수 있는 질문)
** [(대답)] 인간이 나약하여, 하나님을 배반할 줄 아시면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이 시험에 들만한 위험한 나무 열매를 에덴 중앙에 두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실패였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말 잘 듣는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배반할 만한 소지가 있는 순간 기계적으로 장치가 스톱하는 그런 인형으로 인간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절대적 자유권한을 주셨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시기를 바라셨습니다. 인격적 관계란, 서로 배반할 수 없고, 하나님의 적수와 몰래 내통할 이유가 없으며, 심지어 배반의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 때에는 용서받고 관계회복이 가능한 관계를 말합니다.
더구나, 아담(인간)이 실수한 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만큼,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시도록 힘든 고통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겪어야 하실 만큼,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까?
그분이 바로 저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 왜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태초에 하나님을 반역한 우리 조상의 범죄(원죄)를 책임져야 합니까? >> (성경 전체에서 제기하는 질문)
[(대답)] 책임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태초의 인간(아담)의 반역이 후손들의 체질(본질)을 이루었기 때문에 소망이 없어진 존재가 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큰 신뢰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저희의 반역의 체질을 뛰어넘어서서 구원받을 길을 열어 주신 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날마다 저희가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깊이 알아, 더욱 깊이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