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지혜에 이른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 개정판)

{ 성시 } 시편 90편 1-12절 …. [1] 주여, 당신은 대대손손 우리의 피난처, [2] 산들이 생기기 전, 땅과 세상이 태어나기 전, 한 옛날부터 영원히 당신은 하느님, [3] 사람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사람아, 돌아가라,” 하시오니 [4] 당신 앞에서는 천 년도 하루와 같아, 지나간 어제 같고, 깨어 있는 밤과 같사오니 [5] 당신께서 휩쓸어 가시면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이옵니다. [6] 아침에는 싱싱하게 피었다가도 저녁이면 시들어 마르는 풀잎이옵니다. [7] 홧김을 한번 뿜으시면 우리는 없어져버리고 노기를 한번 띠시면 우리는 소스라칩니다. [8] 우리의 잘못을 당신 앞에 놓으시니, 우리의 숨은 죄 당신 앞에 낱낱이 드러납니다. [9] 당신 진노의 열기에 우리의 일생은 사그라지고, 우리의 세월은 한숨처럼 스러지고 맙니다. [10]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 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11] 누가 당신 분노의 힘을 알 수 있으며, 당신 노기의 그 두려움을 알겠습니까? [12] 우리에게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

* = * ( 1 ) 이 시편의 서두 부분은, 마치 허무주의 문학처럼 ‘제행무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3-6절에 보면, ‘천 년도 하루 같아서’, ‘인생은 마치 한바탕 꿈’, ‘아침에 싱싱하게 피었다가도 저녁이면 시들어 마르는 풀잎’에 불과하다며 한탄합니다.

저는 지금 ‘8학년’이니까, 그런 느낌에는 너무도 익숙합니다. 이것은 노년이 아니더라도, 엊그제에 있었던 일 같은데 이미 10수년 전의 일이 된 것을 한숨쉬는 것은, 동서고금에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입니다.

오래 살았다고 장한 것은 아닌 오늘날, 어떻게 노년을 보내야 옳은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오늘의 성시입니다. 이런 분위기로 1-11절을 계속하는 이 우울한 노래는 12절에 가서야 시인 의중에 있던 주제를 내놓습니다. “우리에게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 라는 간절한 기원 문구입니다.

‘날수를 제대로 헤아리게’ 라는 말이, 아까운 세월 어영부영 지내지 않겠다는 결심이라면, 후반부의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 라는 외침은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향한 간곡한 호소입니다.

( 2 ) 요즈음 유튜브 자료에는 철학자, 의사, 목사들이 직접 등장하여 교훈하거나, 또는 옛 사상가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노인에게 주는 삶의 지침을 다루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주로, 노년에는 욕심을 버리라, 건강이 제일이다, 죽는 날까지 생각의 푸르름을 잃지 말아라는 등의 교훈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목사님들은 ‘여생을 값있게 살도록 하라’, ‘삶의 목적을 영원한 가치, 곧 사랑과 정의에 두라’, ‘유혹에 이끌리지 말고 거룩하게 살아라’ 등등의 권고를 하십니다.

그렇다고 이런 교훈들이 시편 90편 12절에 나오는 ‘지혜에 이르는 길’과 일치하는 내용이라고 보기에는 좀 문제가 있습니다. 구약의 지혜는 일반적인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의 시편 가운데 상당수, 잠언 전체, 전도서 등은 지혜문학이라고 하는 특별한 장르에 속하는 글들입니다. 이 지혜문학에서 ‘지혜’라는 말을 할 때(욥기 28:12-28, 잠언 3:19, 9:10, 시편 37:30, 49:3, 111:10 등)에 사용하는 단어가 ‘호크마’라는 히브리어인데, 그 뜻은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지혜’는 신약의 ‘성령’에 해당하는 어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지혜’가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잠언 8:22-26 참조). 태초로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분은 성령님이셨습니다.(창 1:2)

그러므로 ‘지혜에 이르게 하옵소서’ 라는 오늘 시편의 기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하옵소서’ 라는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3 ) 청년 때부터 성령의 인도를 받았으면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그렇지만, 노년에 이른 지금이라도 인간이 아쉬워해야 할 것은, 아직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고 있지 못하다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기를 애절하게 기원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주 성령님이시여, 오시옵소서. 저희 안에 임하시어, 특별히 노년에 처한 저희에게 오시어, 이 마지막 세월이라도 주 성령님 안에서 온전한 삶을 하느님께 바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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