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24일, 본문 묵상> ………… (이상신 생생성경)
{ 만도 2과 } 요한복음 6장 16-21절 …. [16] 저녁이 되었고 제자들은 바다로 내려가서 [17] 배를 띄어 바다 건너편 카페르나움으로 향하였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예수는 아직 저들에게 오시지 않은 상태였다 [18] 그때 바다에 대단히 심한 바람이 일었다 [19] 그렇게 노를 저어 25-30 스타디온 (*5킬로미터)을 나아갔을 때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배에 가까이 다가오자 [제자]들은 몹시 무서워하였다 [20] 그러자 “내가 있도다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셨다 [21] [제자]들은 즐거워하며 배 안으로 모셨고 배는 어느새 목적하던 육지에 닿았다
* = *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과 권세를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사용한 일이 없으셨습니다. 인간으로 세상에 오셔서 사시는 한, 인간이 받는 제약과 한계에 머무시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셨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세상사람들을 올바로 가르치기 위해서, 또는 인생들을 돕기 위해서 그분의 초월적인 능력을 사용한 예가 있었습니다.
가나에서 혼인잔치 때 떨어져가는 포도주를 보충해 주시기 위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요 2:1이하), 전복 직전에 있었던 배를 안전케 하기 위해 풍랑을 멈추신 일(막 4:36이하), 오병이어로 5천 명의 식사를 하게 하신 일(요 6:1이하), 변화산상에서 하늘나라의 정경을 보이신 일(막 9:2이하),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일(요 11:38이하), 수많은 병자를 고치신 일, 그리고 오늘 본문의, 물 위를 걸어오신 일(요 6:16이하) 등이 예수님의 초월적인 능력이 나타난 일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주(메시아)의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겪으시고 죽음을 당하셨는데, 인간이신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이 고통스런 일을 피하고 싶은 욕구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 고통 없이도 구세주 사역을 완성할 수 없는 것인가, 아픔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고통의 때를 좀 단축할 수는 없을까, 궁리하시면서 그분이 지닌 능력을 왜 사용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온전한 속죄의 희생제사는, 제물이 되시는 예수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유혹을 당하시다가도, 돌이켜 생각을 바꾸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룩 22:42)
예. 이 유혹을 가장 본격적으로 받으신 때가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시던 때였습니다. 대제사장의 부하들에게 잡히시고 로마총독의 손으로 넘기우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한 번 고통을 피하고 싶은 심한 유혹과의 한 판 결전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왜 유혹을 받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유혹을 이길 힘을 우리 주님께서 주십니다. 주님께서도 당하신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이길 힘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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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기념하는 믿음의 사람들 >> 질벗 주교 (Gilbert of Caithness, ? – 1245) : 그는 13세기 초 스코틀랜드 북부 케이슨 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전임자인 아담 주교는 ‘십일조 문제’로 농민의 지도자격인 지방통치자들과의 갈등 끝에 살해를 당한 분이었습니다. 질벗 주교는 경건한 신자였고, 또한 지역의회의 의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지역 주민들과의 화해를 조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최우선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일에 공헌했던 인물입니다.
프레데릭 모리스 사제 (Frederick Denison Maurice, 1805 – 1872) : 그는 19세기의 저명한 신학자이며 성공회 사제요, 사회사상가로, ‘기독교 사회주의’를 제창한 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형제애를 강조하면서, 신학과 사회문제를 통합하려는 시도에 힘썼습니다. 산업혁명으로 고통 속에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기독교 관점에서 사회개혁을 주장했고, 1848년에 노동자교육을 위해 ‘런던 노동자 대학’을 설립했습니다. 특별히 ‘보편 구원’을 주장한 것이 크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구원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었고, 인간이 자동적으로 그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책임과 사명이 따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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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구세주로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대신하여 온갖 수고와 고통과 죽음을 온전히 당하셨듯이, 저희도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구원이심을 드러내기 위한 수고를 사양치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