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이들 무리 지어 오는 꿈

<사순절 5주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이사야서 43장 16-21절 …. [16]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바다에 큰 길을 내시고 거센 물길을 뚫고 한길을 내신 이, [17] 그들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거꾸러뜨리시고, 꺼진 심지처럼 사그라뜨리시려고 병거와 기마를 출동시키시고 군대와 용사를 출동시키신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18]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마라. [19]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 이미 싹이 돋았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느냐? 내가 사막에 큰 길을 내리라. 광야에 한길들을 트리라. [20] 사막에 물을 대어주고 광야에 물줄기를 끌어들이리니, 뽑아 세운 내 백성이 양껏 마시고 승냥이와 타조 같은 들짐승들이 나를 공경하리라. [21] 내가 친히 손으로 빚은 나의 백성이 나를 찬양하고 기리리라.”

* = *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 옛날 홍해를 건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바빌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사막 길을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하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는 ‘꿈 같은 환상’을 바라보며 사십시다.

죄의 종살이를 끝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하시는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구원과 해방을 맞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집에 속속 맞아들이는 기쁜 일이 우리 교회에 항상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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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필립비 3장 8-11절 …. [8]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내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것입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 [11] 그러다가 마침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 = *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내가 세상에서 손해볼 것은 무엇이며, 믿음을 지키어 마침내 내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손익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손익계산’은 손실과 이익이 서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내가 얻을 유익이 막대함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잃을 것들은, 분토로 여겨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 곧 세속적 명예, 부, 인기, 세속적 영화인데 반해서, 내가 마침내 얻게 될 것들이야말로 물질로써 헤아릴 수 없는 죄사함의 은혜, 구원과 부활, 영생, 그리고 하늘나라의 영광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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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요한복음 12장 1-8절 …. [1] 예수께서는 과월절을 엿새 앞두고 베다니아로 가셨는데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라자로가 사는 고장이었다. [2] 거기에서 예수를 영접하는 만찬회가 베풀어졌는데 라자로는 손님들 사이에 끼여 예수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고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있었다. [3] 그 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렸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4] 예수의 제자로서 장차 예수를 배반한 가리옷 사람 유다가 [5] “이 향유를 팔았더라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투덜거렸다. [6]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가 도둑이어서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아가지고 거기 들어 있는 것을 늘 꺼내 쓰곤 하였다. [7]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마라. [8]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

* = * 저는 향수에 대해서 아는 게 없습니다. 여기 나오는 나르드 향유가 어떤 향을 풍기는 것인지 모릅니다.

때로는 신사들 한테서도 향기를 맡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향을 쓰는 사람들이 뭔가 고상해 보입니다.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어드린 마리아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마도 최고의 대접을 해 올리고 싶었던 심정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평행복음인 마가복음 14장 3절에 보면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고 했습니다. 옥합 채 향유를 부었다는 것은 상식을 초월하고 있지요?

그것이 봉헌이라면 다시 무를 수 없을 결의를 가지고 행한 봉헌이었으며, 그것이 정성이라면 자신의 전체를 맡겨 올리는 헌신적 정성이었습니다.

미국인 짐 엘리엇(Jim Elliot, 1927-1956)선교사는 에콰도르의 와오다니(아우카)족에 복음을 전하러 동료선교사들과 갔다가 모두 그들에게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는 평소 말하기를 “마침내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육신의 생명)을 바쳐, 결코 잃지 않을 것(영생)을 얻는 자는 어리석지 않다.” 라고 했습니다. 그의 헌신은 진실로 되돌릴 수 없는 ‘병을 깨어 향유를 부은’ 여인의 헌신을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그의 아내 엘리자벳 엘리엇은 자기 남편을 죽인 그 아우카 족에게로 들어가 복음을 전했고, 결국 그 부족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옥합을 깨어 주님께 부어드린’ 부부였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드리게 하옵소서. 하느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저희들이 헌신하도록 도와 주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교회에 하느님의 기쁨이 늘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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