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생애의 극치의 날

<고난주간 목요일, 본문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오늘이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성주간 목요일, 이 날에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그 어느 날보다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이 남아서 전해지고 있는 것은 두 세 가지 일 밖에 없습니다. 이 일들은 예수님의 생애의 핵심적인 목적을 모두 정리한 것이었고, 그 표현의 극치였습니다.

<< 가 >> 사랑을 행동으로 가르치시다 … { 요한복음 13장 3-5, 14-15절 } …. [3]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신의 손에 내주셨고, 또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 [14] “여러분의 주이며 스승인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었으면, 여러분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하오. [15] 내가 여러분에게 한 것처럼 여러분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오.”

* = * 많은 교회들은 일 년에 한 번 이 날 ‘세족례’를 행합니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일 년에 한 번 예식으로 거행하라고 본을 보여 주신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이렇게 남의 발을 씻어 주는 자세로 살라는 가르침이셨습니다. 예식으로만, 또는 매스 미디어 기자들을 불러 놓고, 홍보용 행사를 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은 더구나 아니라고 봅니다.

평소에 이런 삶을 살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말로만의 ‘이웃 사랑’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또 일상적으로 이웃을 존중하며, 도와주고, 용서하며, 상대방의 상황을 심도 있게 이해해 주며 살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계급과 지체가 높은 사람일수록, 배운 것이 많을수록, 많은 사람에게 존경과 귀하게 여김을 받는 사람일수록, 이렇게 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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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 구원의 길을 가르치시다 … {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 } …. [23]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곧 주 예수께서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린 다음, 그것을 떼어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여러분을 위한 내 몸이요.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시오.”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요. 여러분은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시오.”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 = * 이 본문의 24절과 25절의 떡과 포도주를 나누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시오” 라며 끝맺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대부분의 번역자들이 “이 예식을 행하시오”라고 번역하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것을’이라는 말이 ‘이 예식을 행하시오’ 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이런 삶을 사시오’ 라는 의미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논란이 많은 숙제입니다.

하지만, 성찬식에 참예한 사람이, 예식을 끝내고 나와서, 이제는 할 일 다 했으니,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성찬을 받았으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 2:20) 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런 의미로 “이것을 행하시오”(희랍어, touto poieite, 영어, ‘Do this’)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맞다고 봅니다.

성목요일은 ‘성찬식 제정의 날’로 모든 교회가 기념합니다.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이 예식을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기로 작정하는 일이 지속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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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 겟세마니에서 순종의 결단을 하시다 …. { 마태복음 26장 36-39절 } … [36]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가시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도록 하시오.” [37] 그런 다음 예수께서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셨다. 예수께서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더니, [38]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오. 여러분은 여기에 남아 나와 함께 깨어 있어 주오.” [39]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바라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뜻하신 대로 하소서.”

* = * 저는 어렸을 적부터 성경의 이 대목을 읽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인간이기는 하시지만, 하나님이신데 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두고 그렇게도 겁을 많이 내셨을까’ 라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공생애를 사시면서, 하루에도 몇 번 씩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베푸시며 사셨는데, 진정 견디기 힘드시다면, 아픔을 견디어 낼 만한 무슨 비법이라도 행사하시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읽고 또 읽는 가운데 깨닫게 된 것이, 세상사람들을 위하여는 초월적 능력을 사용하셨지만,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그의 신적 능력을 사용하신 일이 없으셨습니다.

여느 인간들처럼 십자가에 달리셔서 몸의 무게가 잡아당기는대로 몸이 처져, 못박힌 손이 찢어지고 뼈가 우그러지며 통증을 느낄대로 다 느끼시며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생 이 십자가를 예상하셨기 때문에, 그 아픔을 묵상하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십자가를 질 시간이 가까와 오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피하고 싶으셨겠습니까?

성경은,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며(눅 22:44), 세 번 씩이나 안타깝게 기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잔을 비켜가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제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셨겠습니까? 아들의 이 안타까운 절규가 하늘과 땅을 오가던 그날 저녁,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윽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결단의 기도로 마감되었습니다.

“제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가 세 번 째 끝날 때에, 폭도들이 횃불을 앞세우고, 칼과 몽둥이를 들고서 겟세마니에 나타났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보내시던 마지막 날을 기억하며 오늘을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며 사랑과 겸손을 가르쳐 주셨고, 빵과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기억할 것을 가르쳐 주셨고, 어떤 어려움에서도 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본보이셨습니다. 저희도 그 날의 일을 본받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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