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복음 } 요한복음 3장 3-8절 …. [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7]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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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물’과 ‘성령’ 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본문 5절) 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물’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회개’를 뜻합니다. 가령 출애굽 사건 때에 ‘홍해’를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지 가나안으로 들어갔듯이, 한번 물 가운데 들어가 죽은 후에 건짐을 받게 되는 이치를 ‘구원’의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또 에스겔서 36장 25-27절에서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너희가 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라는 정결례의 정신을 그들은 읽었습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 시대의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려는 마음으로, 요단 강으로 나아와 ‘물의 세례’를 받았던 동기였습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새로 난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어떤 교회의 예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통상 견진성사를 받고 정규의 신자로 인정받는 절차가 있습니다마는, 그런 의례를 거쳤다고 자동적으로 ‘성령으로 새로 나는 일’이 완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존 웨슬리(1703-1791)는 온 집안이 신실한 교인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심지어 ‘거룩한 클럽’ 이라는 기도단체도 조직해서 자발적으로 경건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선교사로 미국에 가서 복음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당시 “내 자신이 아직 구원 받지 못했음을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와 매우 깊이 낙심하고 있던 차에, 런던의 ‘올더스게잇 가’에서 열린 한 기도회에 갔다가, 마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의 한 대목을 누군가가 읽어주는 것을 듣게 되었을 때, 그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서문’에서 마틴 루터가 강조한 말은,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일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전적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리하여 믿음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하며, 그 사람 속에서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냅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맡겨 올려, 하나님께서 나를 새로 지어주시도록 해야 새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먼 옛날 사도 베드로가 그랬고, 어거스틴이 그랬고, 후란시스가 그랬습니다. 모두 자신을 성령께 맡겨 올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다시 나게 되는 과정입니다.
( 2 ) 오늘은 시에나의 캐터린(Catherine of Siena, 1347 – 1380)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녀는 18세에 도미니칸 수녀원의 수녀가 되어 누구보다 기도생활에 정진했습니다. 특별히 그녀가 낮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로 바삐 지냈습니다.
그가 살던 중세 시대의 로마의 교황들은 상당 기간 동안 국제정치 권력들에 휘둘리어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특별히 프랑스 국왕이 바라는 대로 이태리의 로마가 아닌 프랑스권의 아비뇽에 가서 근무해야 하는 딱한 사정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교회 성직자들이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솔선해 나서서 교회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자가 없었습니다.
비록 캐터린 수녀가 교황 앞에서 일개 수도자에 불과했지만, 그가 하나님의 교회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에는 무섭게 ‘사자후’를 쏟아내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교황은 힘을 얻어 과감히 아비뇽에서 로마로 복귀했고, 교회가 세속 정치에 휘둘림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캐터린은 뇌일혈로 쓰러져 1380년 오늘, 33세로 별세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들로 하여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구원의 길임을 깨우쳐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인본주의 풍조가 난무하는 오늘의 교회들이 회개와 스스로를 성령님께 맡겨 올려 순종하기를 힘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