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이상신 생생성경)

{ 복음 } 요한복음 3장 16-21절 …. [16] “하나님은 독생자이신 아들을 주실 만큼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모든 자는 파멸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붙잡습니다 [17] 세상을 심판하려고 하나님이 아들을 이 세상으로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아들]을 통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18] [아들]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면 이미 심판을 [자청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19] 판결을 [자청했다는] 말은 이렇습니다 빛이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이 고통에 억눌린 나머지 병들고 아프기 때문입니다 [20] 열등감을 가지고 가치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모두 빛을 싫어합니다 빛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지 않습니다 자기 삶이 책망받지나 않을까 해서 그렇습니다 [21] 하지만 진실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옵니다 자기 생활이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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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은, 창조하신 피조세계 곧 자연도 사랑하셨겠지만,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오늘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인간이 사랑스럽게 굴어서 사랑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렸고, 상심시켜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인간들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으시고> 소망을 가지고 사랑하셨습니다.

나.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이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대속물로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아들을 외면하실 만큼 지독한> 사랑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값진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류를 그토록 사랑하셨습니다.

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래서 <우리 인류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을 보시기 위해>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다가도 흐지부지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인류가 구원과 영생에 이르기를 바라서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제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저의 사랑이 그러하니, 저의 이웃을 향해서도 뜨뜻미지근하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고 이태석 신부에 관한 최근의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가 남부 수단에 의료선교사로 가서, 대장암으로 투병중인 몸을 가지고도 불철주야 정성을 다해 가르치던 수단 청년들이, 지금 57명이 의사가 되었거나 의학도가 되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고인이 48세의 이른 나이로 죽던 날까지 섬기며 살았던 곳에서 고인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주제의 영화작품을 만들려고 그 곳 수단에 갔던 영화 감독 ‘구 환’ 씨가, 고인의 제자들이 고인에게서 배운 그대로, 환자들을 만나면 ‘어디 아프세요’ 라고 묻기 전에, 환자의 손을 붙들고 먼저 그들의 삶을 치유하려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눈물이 날 만큼 감명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불교 신자임에도, 자기 퇴직금을 투여해서, 이 영화 ‘부활’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미 고 이태석 신부의 생애를 다룬 영화 ‘울지마 톤즈’를 제작한 감독입니다.

의료선교사 이태석 신부나 구 환 씨는 놀라운 역사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 2 ) 오늘은 힌디어(인도 말)로 성경을 번역한 판디타 메어리 라마바이 여사(Pandita Mary Ramabai, 1858 – 1922)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녀는 인도의 최고 계급인 브라만 가문 출신으로, 범어(Sanskrit) 힌두 경전 전문가인 그녀의 아버지가, 여성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이여서, 딸에게 한껏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라마바이 여사는, 여성이어도 ‘Pandita’(‘존경받는 학자’의 뜻)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일찍 별세하고, 그녀는 결혼을 했는데, 남편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별세했습니다. 그 무렵 영국인 선교사들에게서 기독교의 자비와 구원의 메시지를 듣게 되어, 그는 곧 세례를 받고, 세례명을 Mary 라고 했습니다.

1883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여성교육제도를 연구하고, 인도로 돌아와 여성들을 위한 학교와, 불우 여성과 버려진 여자아이들을 위한 보호소를 건설하는 등 인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일했습니다.

1910년대에 이르러, 그녀는 힌두교 여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힌디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인도의 수많은 문맹여성들에게 글을 익히는 계기를 주었고, 자주적인 사고를 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녀는 1922년 오늘 별세했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많은 힌두교도와 사회운동가들이 와서 애도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으니, 이 세상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 생명의 빛을 비추며 살게 하옵소서. 아무 조건 없이, 포기하지 말고, 구원과 영생에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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