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이신 예수님 앞에서의 기도

<부활 4주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성시 } 시편 23편 …. [1]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2]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3]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5]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6] 한평생 은총과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 서신 } 요한묵시록 7장 13-17절 …. [13] 그 때 그 원로들 가운데 하나가 “흰 두루마기를 입은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어른께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했더니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 희게 만들었습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옥좌 앞에 있으며 하느님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옥좌에 앉으신 분이 그들을 가려 주실 것입니다.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태양이나 어떤 뜨거운 열도 그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요, [17] 옥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생명의 샘터로 인도하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입니다.”

{ 복음 } 요한복음 10장 24-29 …. [24] 유다인들이 예수를 둘러 싸고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25] 그러자 예수께서는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 [26] 그러나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29]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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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주님께서 나의 목자이시라면, 나는 그의 양이라’ 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목자이신 그 분께서 우리들을 ‘그들은 내 양떼라’ 고 매겨주신 것은, 그것이 그 분의 열망이기 때문이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지켜 주며, 너희를 좋은 풀밭으로 늘 인도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할 터이니, 너희의 삶은 복될 터이다. 더구나 위험한 맹수들이 달려들 때에는, 내가 내 생명을 다해 너희를 지킬 것이니, 그토록 복된 양떼가 어디 다시 있겠느냐?

그러니 너희는 나만 믿고 따르기를 바란다. 목자인 나만 믿어라. 나는 세상 목자들처럼 맹수가 달려들 때에, ‘나만 살겠다’며 도망칠 목자가 아니란다. 나는 참 목자란다.’

이것이 오늘의 본문들의 안타까운 호소입니다. 양떼가 먼저 호소할 말씀인데, 목자가 그런 호소를 양떼들을 향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예사로운 양떼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2 ) ‘예사롭지 않은 양떼’에 속해 있는 저는, 오늘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는 제 어버이의 몸에서 태어난 날 부터 지금까지, 팔십 년을 돌이켜 보면, 마음 속에 예수님을 ‘나의 목자’ 라고 그 분을 바라보며 뒤따르고 살던 것이 얼마 되지 못합니다.

찬송으로 나의 목자를 찬양할 때, 말씀묵상으로 나의 목자이심을 고맙게 생각할 때, 어떤 위험한 순간들을 벗어나기 위해 ‘이 일만 벗어나게 해 주시면, 목자이신 주님을 잘 따르겠습니다.’ 외치던 때, 그러던 때에는 맘 속에 진정 목자이신 주님을 생각하곤 하지요.

그러나 양의 책임을 물으실 때면, 양의 본능적 생태를 추궁하실 때 말고, 마땅히 그 분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것을 막대기로 가리키고 계실 때에도, 저는 목자이신 그 분께 고운 시선을 보여 드리지 못하며 ‘목자님’의 맘을 괴롭혀 드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살려 두신 목적은, 그래도 양의 구실을 하지 않을까, 소망의 눈으로 저를 오래 참으시며 보고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 3 ) 그래서 저는 오늘 다짐합니다. 이제 다 늙어, 자연사하기에도 버거운 건강으로 살고 있는 저를 향해, ‘너 좀 제 구실하거라. 너는 풀만 뜯다가 끝나는 양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너는 나의 영원한 나라에서 살게 될 양이다. 네 신분을 내가 수없이 네게 알려 주지 않았더냐? 변함없는 충성된 양, 순종의 양이 되거라.’ 타이르시는 목자의 음성에 진정 귀기울이는 복된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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