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기념일,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서신 차용 } 사도행전 16장 6-10절 …. [6]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시므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가서, [7]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다. [9] 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0] 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 복음 } 요한복음 15장 18-20절 ….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세상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여 있다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것으로 여겨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뽑아냈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그의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또 그들이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의 말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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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존 웨슬리는, 제18세기 세계교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신 이였습니다. 웨슬리는 1703년, 영국성공회 성직자 아버지와 청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25세에 그는 사제 안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회의 상황을 점차 온 몸으로 심도 있게 파악하게 되면서 ‘교회가 복음으로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 못한 점’, ‘경건성이 결여되어 있는 점’,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점’,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대단히 고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교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성직자인 자기 자신도 지니고 있는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웨슬리의 이런 생각은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염려와 일치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기회를 열어주셨는데, 1738년 5월 24일, 런던 올더스게잇 거리의 어느 곳에서 모이는 모라비안(*복음주의 보수파 교단) 그룹 모임에 참석해서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은혜’는 실제이며, ‘회심’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적인 체험이 되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또한 “만민은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느 영혼이든 멸망해도 문제가 없다고 할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날로 더욱 성화되어야 하고, 그 결과는 사랑의 실천과 사회적 기여를 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웨슬리는 말을 타고 영국의 온 지방을 다니며 거리 거리마다 가두전도를 했고, 멀리 미국과 유럽의 교회들을 때때로 방문하면서, 그가 벌인 ‘Methodist’(‘체계적 신앙생활’)라는 이름의 복음전도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나의 전도구가 전 세계”라고 믿었습니다.
존은 그의 일생에 성공회를 떠날 생각이 없었고, 성공회가 그를 추방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대영백과사전에서 ‘John Wesley’ 를 찾으면 대뜸 ‘Anglican priest and founder of the Methodist Church(성공회 사제이며 감리교 창설자)’라고 첫 줄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존 웨슬리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과연 성공회 소속의 성직자라고 자인하고 싶을까, 또 그가 창설자로 되어 있는 감리교의 목사임을 인정할 것인가가 모두 의문스럽습니다. 양 교회들이, 18세기 영국교회에 비해 복음적이고, 경건하며, 성령의 이끄심에 열심있는 교회가 되었다고 보겠습니까?
오늘, 웨슬리는 자신의 회심기념일인 5월 24일을 자기의 이름을 두고 그를 기념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기도를 바칠른지요.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회심과 신앙생활이 관념이 아니고, 삶의 실제가 되게 하옵소서. 만민이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므로, 교회의 존재목적이 선교에 있게 하시며, 온 세상이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은총 속에 살게 되도록 저희 교회를 도구로 쓰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