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서신 차용 } 사도행전 16장 11-15절 ….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립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앞서가는 로마 식민지 도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여겨지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서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인들에게 말씀을 전파했다. [14] 티아티라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나님을 섬기던 리디아라는 여인도 말씀을 듣고 있었는데, 바울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우리를 그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신다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우리는 그의 간청에 따랐다.
* = * 마케도니아에서 얻은 첫 수세자(세례 받은 이)는 리디아라는 자색 옷감 장수로 사는 여교우였습니다. 그가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 듣고 있지 않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구원의 복음 앞에 자신을 내어맡겼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문자 상으로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날 리디아가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복음 앞에 두 손을 들고 투항하고 있었다는 분위기를 문맥에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온 집안 식구가 모두 세례를 받았다>든지, 바울선교단 일행이 <그의 집에 머물도록 간청했다>는 사실은 ‘뜨거운’ 열의가 없이는 되는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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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요한복음서 15장 26-27절 ….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여러분에게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오. [27] 그리고 여러분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오.”
* = *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복음을 전하기 전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말하는 사람도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듣는 사람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입어 복음의 참 뜻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나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 사람이 아무리 자기 말재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 하여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에만, 말씀이 생명의 말씀으로 살아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준비할 때에도, 줄곧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기를 빌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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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복음 자체는 한 사람의 영혼에만 머물기를 거부하면서, 이 사람의 영혼에서 다시 그의 이웃의 영혼에게로 달려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복음이 복음 되게 하는 주역을 담당하십니다.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세 분의 선배 성도들을 움직였던 성령의 역사를 간단히 메모해 드립니다.
( 1 ) 캔터베리의 어거스틴 (Augustine of Canterbury, ? – 605) : 밀라노에서 회심의 경험을 하고 고향 아프리카의 힙포교구 주교가 되었던 힙포의 어거스틴(354-430)과는 이름은 같지만 다른 사람입니다.
캔터베리의 어거스틴은 애당초 로마의 성안드레수도원의 수도자였는데, 교황 그레고리1세가, 아직 이교도들이 대세인 영국 땅을 복음화하기 위해서 40여 명의 수도자들을 동행하게 하여 어거스틴을 그 책임자로 영국에 파송했습니다.
597년에 도착한 이들 선교사들은 당시 영국왕 에텔베르트의 도움을 받아, 물밀듯이 영국 전토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하여 영국관구를 설립하고, 이를 캔터베리관구라 칭했습니다.
하지만 배타심이 강했던 브리턴인(영국인)들은 외국인인 어거스틴의 지도를 받기를 꺼렸습니다. 그래서 그가 605년 숨을 거둘 때까지 영국의 기존 교회와의 융합을 이루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기고 별세했습니다.
( 2 ) 존 칼뱅 (John Calvin, 1509 – 1564) : 종교개혁기의 대표적인 개혁가 마틴 루터와 존 칼뱅 두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루터는 독일에서 활동했고, 칼뱅은 스위스에서 활동했습니다.
칼뱅은 개혁신학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는 개혁신학의 교과서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엄격한 교회규율과 목회의 질서를 확립했습니다.
그의 신학적 주장 가운데 ‘이중예정론’(‘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구원하기로, 어떤 사람은 버리시기로 예정하셨다’는 신학 이론)은 장로교의 신앙을 대표하는 교리입니다.
( 3 ) 필립 네리(Philip Neri, 1515 – 1595) : 그는 남다른 생애를 살면서 교회를 교회 되게 하기 위해 크게 공헌한 사람입니다.
열여덟 살에 로마로 가서 은둔수도자로 살기 시작했고, 로마의 카타콤에서 도시빈민들과 더불어 생활하며, 그들의 친구요 조력자로 살았습니다.
특별히 ‘오라토리움’이라는, 성직자들과 성도들의 회합을 만들어 설교, 찬양, 교양교육 등으로 성도들과 수도자들로 하여금 침울한 생활을 떠나도록 권고하였고, 오히려 그들이 신앙인이므로 쾌활명랑한 생활을 하도록 강조했습니다.
교회의 예술활동과 연관지어, 교회음악이 생기를 가지도록 방향을 전환하는 데에 관심을 두고, 바하나 헨델의 작곡 경향에 변화를 줄 정도로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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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사도 바울 이래 수많은 복음의 사역자들이 성령의 역사하심을 힘입어 그들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음을 보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모든 인위적인 시도를 버리고,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