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서신 차용 } 사도행전 20장 17-20, 22-25절 ….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서, 교회 장로들을 불렀다. [18] 장로들이 오니,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잘 아십니다. [19] 나는 겸손과 많은 눈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또, 유대 사람들의 음모로 내게 덮친 온갖 시련을 겪었습니다. [20] 나는 또한 유익한 것이면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전하고,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여러분을 가르쳤습니다. … [22] 보십시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내게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23]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성령이 내게 일러주시는 것뿐인데, 어느 도시에서든지,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4] 그러나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하기만 하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25] 나는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여러분 모두가 내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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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후 제1세기 영적 세계대전의 어마어마한 작전을 수행 중이던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 날이면 날마다 그리고 있었던 작전상황지도가 있었습니다. 그 지도에 의하면 악령의 지휘본부가 두 곳이었는데, 그 하나가 예루살렘이었고, 또 하나는 로마였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일에 가장 결정적인 방햇거리가 그 두 곳이었습니다. 한 곳은 고래로부터 명목상으로나마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던 곳이며, 그곳은 하나님께서 친히 임하여 계신다고 믿어왔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곳은 세속권력의 총집산지인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생애가 끝나기 전에, 그 양대 악령의 지휘본부에 복음을 들고 들어가 맞대결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승패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습니다. 승리의 보장은 이미 갈보리 십자가 사건 때에 성취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곳 가운데 어디를 가든 그의 목숨이 위태한 것은 그의 영적 감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바울은 예루살렘 한 곳이라도 먼저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이런 결심을 주신 분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페소 장로들을 만나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에 앞서, 이것은 ‘성령의 이끄심’(행 20:22, ‘성령에 매여서)’인 것을 전제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을 만났으며, 성전과 산헤드린의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기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는 당장 체포를 당했지만, 로마시민권자임을 밝히고, 로마 황제인 카이사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말했으므로, 그의 두번째 기도인 로마에서의 복음증거까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열정과 기도가 분명하다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우리들의 계획보다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길을 터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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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들 >> ( 1 ) 케빈 (Kevin of Glendalough, 498 ? – 618 ?) : 케빈은 6세기 아일랜드의 수도자로, 여러 전설적 업적을 남기어 지금껏 교회의 숭앙을 받고 있습니다.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경건하고 은둔수사의 생활을 기뻐했습니다. 수도원 교육을 받고, 바위 동굴에서 금식과 묵상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성경 못지 않게 자연을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렌달로에 대규모 수도공동체를 설립하고, 많은 신학자들과 기초과학도들을 배출하는 한편, 수도원의 생활 규정들을 제정했습니다.

특별히 많은 성직자들을 배출하여 아일랜드 온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들의 목회활동을 진흥시켰습니다. 케빈은 시와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교회의 찬송가를 기초하는 일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 2 ) 챨스 루왕가 (Charles Lwanga, 1860 ? – 1886) : 루왕가는 19세기에 우간다의 청년 기독교인으로 왕궁 관리직원으로 일하다가, 국왕의 비행을 시정하기 위해 충언을 하던 중, 왕의 미움을 사서 1886년 6월 3일 사형을 당했습니다.

아프리카 원주민인 그는 궁정 소년봉사자들을 내밀히 기독교 신앙 안에서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왕이 그 모든 소년들을 성적 희롱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루왕가는 이 못된 행실을 저지하기 위해 소년들에게 이를 거절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챨스 루왕가는 26세로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그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죽음을 의연히 맞이했습니다. 그가 죽던 날 46명의 소년들이 함께 사형을 당했습니다.

우간다의 초기기독교 선교 역사 책에 그들 모두의 이름이 기록되어 오늘까지 기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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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성령의 매인 바 된 것을 인식하면, 서슴없이 저희의 믿음을 증거하는 일에 매진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며, 복음이 우리 주변으로부터 땅끝까지 선포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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