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태복음 5장 1-12절 …. [1] 예수께서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왔다. [2] 예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리라, 성령에 목마른 사람들이여!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오. [4] 행복하리라, 슬퍼하는 사람들이여!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오. [5] 행복하리라, 온유한 사람들이여!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오. [6] 행복하리라, 공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여!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오. [7] 행복하리라! 자비로운 사람들이여! 그들은 자비를 받을 것이오. [8] 행복하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여!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오. [9] 행복하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여!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오. [10] 행복하리라, 공의로웠기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여!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여러분을 모욕하고 박해하며, 여러분에 맞서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여러분은 행복하리라!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시오. 여러분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큽니다. 사실 여러분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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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구세주(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그의 인생론을 펼치시기를, 여덟 가지의 행복론적 서술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덟 절의 문장이 모두 라틴어 번역에서 ‘베아투스’(복되다)로 시작하기 때문에, ‘팔복’ 또는 ‘진복팔단’ 이라고도 불러왔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계율인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보자면, 메시아의 이 행복론은 실상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행복한 인생’을 말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개역성경을 비롯한 많은 한글 성경이, 3절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 운운’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부분을 영어 성경에서 ‘those who are poor in spirit’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spirit’(희, 프뉴마)은 성경에서 대부분 ‘성령’으로 번역하는데, 여기서만 ‘(인간의) 마음’으로 번역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서번역자 신복룡님은 “성령에 목마른 사람”이라고 함으로써 대표적 현대문 영역본 NEB가 “those who know their need of God”(하나님에 갈급함을 깨달은 자들) 라고 한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4절의 “슬퍼하는 사람” 역시 인간사로 슬퍼한다기보다, 영적인 큰 문제, 곧 죄를 슬퍼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는 기뻐합니다. 여러분이 슬퍼했기 때문이 아니라, 슬픔을 통하여 마침내 회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를 자아내어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고후 7:9-10) 라는 말씀에 부합합니다.
5절의 “온유한 사람”이란 불의를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고, 거짓을 알고도 그냥 덮고 지나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인간의 품성 속에 맺어 주시는 열매로서의 온유함을 말하는 것입니다.(갈 5:23)
6절의 “공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상식이나 세속의 법조항을 따져 의를 세우려 하는 사람들을 말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호자(* ‘성령’을 말함)께서 오시면 죄악과 공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오” 라는 말씀에 비추어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7절의 “자비로운 사람”을 묵상해 봅니다. 인성이 자비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사악하고 질투하며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밟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롬 5:5)” 라고 하였습니다. 성령 만이 우리를 자비한 인품을 가지게 합니다.
8절의 “마음이 깨끗한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간은 위선과 이중성(표리가 부동함)이 마음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간절히 빌 때에, “하나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정신을 제 안에 새롭게 주소서. 주님 면전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주님의 성령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0-11)” 라고 성령 만이 인간성을 깨끗하게 하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9절을 봅시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을 묵상합니다. 전쟁을 그치게 하기 위해 많은 정치가들과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바쁘게 오가는 것을 봅니다. 국가간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서 그들이 바쁘게 다니지만, 그것으로는 평화가 오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고후 5:20) 성령의 인도로 성취되는 것이 평화입니다.(갈 5:22 참조)
마지막으로, 10절의 “공의로웠기에 박해를 받는 사람”을 봅시다. 처벌과 고문과 죽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변절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붙잡힘을 받은 사람들은 담대함으로 그리스도를 따를 수가 있습니다.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했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행 7:55)”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분들이 박해를 이깁니다.
<기도> 주 하나님, 만복의 근원이신 성령님께서 저희 안에 내주하시고, 저희를 항상 이끄사, 저희로 세상을 이기게 하시며,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