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개역개정)
{ 서신 } 고린도후서 5장 14-20절 ….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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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철학자 빠스칼이 그의 저서 ‘팡세’(Pensees, “생각들”)에서 소위 ‘파스칼의 내기’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신의 존재를 수학적 사고에 기반해서 다음과 같은 풀이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믿는 것이 이득이다. 존재하신다면, 무한한 복(천국)을 얻게 되고, 비록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손해 볼 것이 없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가 실제로 존재하신다면, 영원한 벌(지옥)을 당할 터이니 얼마나 손해인가 말이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라는 수학적 입증이 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 이런 수 셈을 하자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하시고, 창조주의 신분으로 피조물들에게 굴욕과 수치를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크신 사랑이었고, ‘강권’이셨습니다. 가시관을 쓰고 흘러내리는 피로 범벅이 된 참담한 얼굴을 내미시며, “이래도 너희가 나의 사랑을 거절할 테냐?”고 묻고 계시는 홀로 한 분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이 나눌 수 있는 사랑, 곧 연인이나 부부간의 사랑, 부자지간, 모녀지간, 형제지간의 사랑, 전우애, 동지애 그런 것 다 합한 것보다도 더 큰 사랑을 보여 주셨고, 우리들에게서도 큰 사랑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권’(희 suneko, 영 urge)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목숨 바쳐, 온 몸이 다 닳도록 사도의 직을 감당했던 바울이나, 갈릴리 호숫가에서 사랑의 맹약을 한 베드로 사도의 후일의 삶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강권하심을 알아차린 사람들의 자취가 그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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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 >> 리쳐드 박스터 (Richard Baxter, 1615 – 1691) :
박스터는 영국 청교도운동의 핵심 인물로, 말은 ‘운동가’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는 철저한 목회자였고, 신학자였습니다. 평범한 신앙적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라, 신학교에 갈 기회를 얻지 못하여, 다만 독학으로 어거스틴과 칼빈, 루터 등의 저서를 읽으면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18세에 이미 영국의 챨스 1세 왕의 법정에 끌려다니며 종교재판을 받기 시작했는데, 교권주의자들의 불신앙적인 태도에 역겨움을 느끼고, 교회 현상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이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개체교회의 목회와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 평생 신자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며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최초로 목회한 키더민스터(Kidderminster) 교회에서 마을 전체를 경건한 신앙공동체로 만드는 목회를 했습니다. 1662년에 청교도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수 천 명의 목회자들이 교회를 떠나야 했던 그 때에 박스터도 면직, 추방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그는 수 차례 투옥과 재판을 받았지만, 저술활동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저서들(‘개혁된 목회자’, ’영원한 안식에 이르는 성도의 길’, ‘기독교 신앙의 요체’, ‘믿는 자의 이유’)이 후대의 목회자들에게 기본지침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교리논쟁에서 그는 하나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필수의 신앙 내용에 관해서는 성서적 규범에서 촌보도 양보할 수 없다, 필수의 내용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관용의 자세를 보인다, 그러나 모든 교리논쟁은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무한한 사랑으로 일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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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모든 인류를 구원의 길로 강권하시는 주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다시 감격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저희도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저희 이웃을 사랑하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