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키릴 기념일, 말씀 묵상> ……. (새번역)
{ 누가복음 1장 41-43절 } ….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에, 아이가 그의 뱃속에서 뛰놀았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42] 큰 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았고, 그대의 태중의 아이도 복을 받았습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 =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에서 언쟁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짜증스럽고,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다투는가 의심스러워지지 않습니까?
하지만, 때로는 치열한 논쟁이 있었기에 기독교 신앙은 올바로 설 수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교회가 기념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신학논쟁을 할 때에는 목숨을 걸고 했습니다. 기독교 교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참된 신앙의 전통 위에 머무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의 정점에 있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끔 교리 논쟁의 역사를 언급하더라도, 그런 역사가 있었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신실한 신학자들을 세워주셔서 우리들의 신앙이 올바른 진리 위에 토대하기 위해서 고생들을 했구나 하며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주후 5세기 기독론 신학논쟁의 와중에서 명쾌한 성경말씀 풀이를 통해 어지럽던 교리논쟁을 정리했던 분인 알렉산드리아의 키릴(Cyril of Alexandria, 380 ? – 444)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네스토리우스(Nestorius) 라는 이의 신학적 주장에 심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인간인 마리아가 하나님인 예수를 낳을 수가 있겠는가? 인간이 낳은 존재는 인간일 수 밖에 없으니, 예수는 엄연한 인간일 뿐이지, 신격을 지닌 분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고 했습니다.
여기에 반박하고 나선 사람이 키릴이었습니다. 위에 적은 누가복음 말씀에서 세례 요한을 임신하고 있었던 엘리사벳이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를 향하여, “내 주님의 어머니” 라는 호칭으로 말합니다. 키릴은 이것을 중대하게 생각했습니다.
즉 ‘내 주님의 어머니’라는 말은 단순히 ‘내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말이 아니라, ‘내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 라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마리아의 신분이 신의 위치로 승격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던 마리아의 몸에 신격이신 하나님께서 ‘참 신과 참 사람인 그리스도’로 잉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온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시고, 또 그 하나님께서 ‘온전히 수난 당하심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게 되었다고 키릴은 말했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참 인간이 되셨기에, 그의 30년 인생을 통하여 온전한 인간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사셨다고 말했습니다.
이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고, ‘성자 하나님’으로 우리가 받드는 것입니다. 성삼위 곧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가운데 위격(신격)의 차등이 전혀 없는 ‘성자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1장 14절 } ….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 = * 여기서 ‘말씀’이라고 한 것은 인간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생성원리이며 영계와 물질계를 총괄하는 하나님의 설계와 섭리를 총칭하는 ‘로고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태초로부터 함께 계셨던 분이셨고,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한때 인간세계에도 오셨던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됨”을 위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흔히 표현하듯이 ‘육신을 (옷 입듯이) 입고’ 오셨다든가, 승용차 타듯이 ‘인간의 몸에 실려’ 오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키릴이 그의 기독론 신앙을 올바로 전하기 위해서 인용했던 성구들이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있었지만, 여기서는 장절만 몇 개 적어 올립니다:
< 빌립보서 2:6-8, 갈라디아서 4:4, 이사야서 7:14, 히브리서 2:14-17, 고린도전서 2:8 >
이리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약화시켰던 네스토리우스를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회에서 파문하는 것으로 오랜 논쟁이 일단락되었습니다.
키릴은 어떤 의미에서는 완고하고 논쟁적이었지만, 그의 완고성이 교회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정통신앙을 지킬 수 있게 하였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주후 5세기에 정통적 기독교신앙을 바로 세운 키릴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 시대든지 교회로 하여금 인본주의적 생각에 빠지지 말도록 지켜 주시고, 구원의 복음을 올바로 믿는 교회로서 보전해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