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주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열왕기하 2장 9-15절 …. [9] 강을 건너면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야훼께서 이제 나를 데려가실 터인데, 내가 자네를 두고 떠나기 전에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말해 보게.” 엘리사가 청하였다. “스승님, 남기실 영검에서 두 몫을 물려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10] 엘리야가 말하였다. “자네는 아주 어려운 청을 하는군. 내가 떠나는 것을 자네가 본다면 소원대로 되겠지만, 보지 못한다면 그렇게 안 될 것일세.” [11] 그들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길을 가는데, 난데없이 불말이 불수레를 끌고 그들 사이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동시에 두 사람 사이는 떨어지면서 엘리야는 회오리바람 속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다. [12] 엘리사는 그 광경을 쳐다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지키던 병거여, 기병이여 …” 엘리야가 다시 보이지 않게 되자, 엘리사는 자기의 겉옷을 두 조각으로 찢어버렸다. [13] 그리고는 엘리야가 떨어뜨린 겉옷을 집어 들고 돌아와 요르단 강 가에 서서 [14]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쳤으나 물이 갈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야의 하느님 야훼여, 어디 계십니까?” 하면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엘리사가 강을 건너는데 [15] 예리고에서 온 예언자 수련생들이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말했다. “엘리야의 영검이 엘리사에게 내렸구나.”
* = * ‘영검’ 이란 기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영적 효험을 말합니다. 엘리야의 영검을 몹시 부러워하던 그의 제자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에게, 그 영검을 좀 넘겨주고 가라고 졸라대고 있었습니다.
열왕기시대(주전 850년 경)에는, 스승이 입고 있던 옷에서 영검이 전수되는 것이 가능했는지 몰라도, 열두 제자를 남기고 가시던 예수님께서는 옷을 남기신 것이 아니라,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제자들이 스승 예수님의 영검을 이어받아 영적 사역을 계속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제자로서의 사역을 위해, 성령을 통하여 저희에게도 영검을 주시기를 간구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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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갈라디아서 5장 17-25절 …. [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19] 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20]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21]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경고한 바 있지만 지금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22]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23]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25]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 = * 본래 육체도 육체의 욕구도 악하게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악령이 타고 들어와서>, 인간을 하나님의 성령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죄를 짓게 되고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위의 본문 22절에 열거한 ‘성령의 열매’(사랑, 기쁨, 평화 등등)는,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에 나열된 ‘성령의 선물’(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치유, 기적,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해석)에 비해서는 좀 열등한 차원의 것, 말하자면 성령께서 인간에게서 이루는 초보적인 효과가 아닌가 곡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열매’가 ‘선물’에 비해서 저급하다거나 고급하다는 비교는 성경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목적은 <인간을 구원에 이르도록 도우시는 일>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영적훈련의 단계가 약한 사람에게는 ‘열매’를 맛보게 하신다든지, 단계가 높은 사람에게는 ‘선물’을 베푸신다든지 하는 등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령이, 아무리 신앙훈련이 오랫동안 잘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열매’의 차원에서 파멸을 당하도록 유인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완성은, 하늘나라 가는 날까지는 ‘미완성’의 단계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마지막 유혹’ 이라는 넌픽션 스타일의 픽션 예수전에서, 십자가에 오르시어, 많은 출혈로 정신이 몽롱해져,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던 순간에도, 악령은, 십자가 수난의 효험을 무효화시키고자 예수님을 유혹하려 덤비고 있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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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루가복음서 9장 57-62절 …. [57] 예수의 일행이 길을 가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예수께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59]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는 “선생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60]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 하셨다. [61] 또 한 사람은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 = * 이 단락(57-62절)에 등장하는 사람이 두 사람입니다. 앞의 사람은, 자기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 되기를 바랐던 사람이었고, 뒤의 사람은 예수님께서 제자 삼으시려고 청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탈락했습니다. 앞의 사람은, 주님의 제자 되는 것이 무슨 출세나 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었던 사람이고, 뒤의 사람은, 영적 사역의 <긴급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위의 두 가지 이유로 제자훈련과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저 세상(또는 성도들의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영적 사역에 뛰어든다거나, 취미 정도로 영적 사역을 건드려 보는 사람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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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독생자를 인간이 되게 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하실 만큼 진지하고, 필요긴급한 인류구원이라는 영적 사역을 저희가 가볍게 보지 않게 하옵소서. 저희의 구원을 위하여,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마음에 품으신 뜻이 성령을 통하여 저희의 관심과 염려 속에 항상 살아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