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바울 두 사도의 기념일> …… (신복룡 신구약전서)
{ 서신 } 티모테오 후서 4장 17-18절 …. [17] 주께서 나(* 바울)와 함께 계시며 나에게 힘을 주셨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선포할 수 있었고 그 말씀이 모든 이방인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주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원해 주셨다. [18] 주님은 앞으로도 나를 모든 사악한 무리에게서 건져 구원하시어 주님의 하늘 나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영원무궁토록 그분께 영광이 있기를 빈다. 아멘.
{ 조도 정과 } 사도행전 11장 7-10절 …. [7] 그때, 주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저것들을 잡아 먹어라.’ [8]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온전하지 않거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온전하지 않다고 말하지 마라.’ [10] 이런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 = * ( 1 ) 오늘은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 두 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두 분 중 한 분 만이라도 기독교를 대표하는 분인데, 왜 두 분을 한 날에 기념하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마도 이것은, 주후 1세기의 초대교회에서 이 두 분의 협력적인 선교활동이, 일치된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점을 생각하면서, 두 분을 한 날에 함께 기념하는 전통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 분 사도의 인간성이나, 그들의 선교활동에 관해서는 교회의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서 많이 듣고 묵상했을 것이기 때문에, 오늘의 말씀 묵상에서는 생략합니다.
그 대신, 두 분 사도들의 심령 안에서, 무엇이 그들의 선교활동을 그토록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했을까를 묵상해 봅니다.
두 분은 모두 주님 앞에서 크나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하고, 신앙적 낙오자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개하면서, 사죄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그 은혜의 체험이 동력이 되어, 복음 사역을 역동적으로 이끌어나가게 된 것입니다.
( 2 ) 베드로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하면서 대뜸 제자로 동원되었습니다. 그는 근성이 남에 뒤지는 성격이 아니어서, 자타가 공인하는 ‘으뜸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성격이 급해서 주님 앞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실수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사역 방향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그를 낭패로 떨어뜨렸습니다.
즉,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하던 때만 해도, 베드로와 그의 동료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권력자들과 일전불사, 한 판 대결을 한 후, 왕위에 등극하실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실 때에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뭔가 대결의 날이 가까왔다는 말씀을 하실 때에도, ‘칼이 준비되었다’고 주님께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엉뚱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죄를 대속하실 제사’를 십자가 위에서 치르실 것이라는 그림은 베드로의 머리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집 뜰에 앉아서 천연덕스럽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것입니다.
( 3 ) 바울은 ‘모세의 율법이 복음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예수님을 범법자로 몰고 있을 때에, 그 무리들과 동조하던 자였습니다. 그 증거가, 스테파노를 돌팔매질로 처형할 때에, 그 재판을 지극히 온당하게 여겼던 사람입니다.
처형에 가담한 무리들의 ‘겉옷을 맡아 두고 있었다’(행 7:58)는 말은 그 돌재판의 집행자였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그는 제사장의 위촉장을 받아가지고(행 9:1-2), 곳곳에 다니면서 숨어 있는 기독교인들을 색출해 재판에 넘기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족적이 바울의 마음에 큰 짐으로 남아,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이후로도, 그가 잡아서 재판에 넘긴 성도들의 모습이 눈 앞에 떠올라, 견딜 수 없게 몸서리쳤을 것입니다. ‘내가 어찌 그런 몹쓸 짓을 했나?’ 고.
( 4 ) 하지만 두 사도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때마다,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가 엄청나게 고마워서, 다시 감격 속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복음 사역에 새 힘을 얻곤 했습니다.
<통회와 회개>는 그들에게서 힘을 뺏는 것이 아니라, 박차를 가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들의 모든 예배에서, 회개의 은혜가 우리들의 마음에 흡족할 만큼 겪어지도록, 기도와 묵상으로 도움을 받기를 바랍니다.
<기도> 주 하나님, 어찌 회개의 은혜가 베드로와 바울 사도에게만 있겠습니까? 저희에게도 그 뜨거운 회개의 은혜가 풍성해져서, 저희의 복음전파가 계속되도록, 성령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